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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청년영향평가제가 시급한 이유

입력 | 2017-04-14 03:00:00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하루 종일 한 푼도 안 쓰고 살기, 9800원으로 데이트하기, 하루 세 끼를 39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기….

이런 극한의 체험이 요즘 청춘들에겐 일상이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은 돈 없는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편의점 도시락과, 이보다 싼 안주를 파는 초저가 주점의 실태를 잇달아 방송했다. 서울에서 9800원에 데이트하는 노하우는 자산 컨설팅 프로그램 ‘황금나침반’에 나온다. 1000원짜리 커피 마시고→인사동과 북촌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낙원상가에서 2000원짜리 우거지국밥 먹고→2000원짜리 붕어빵 한 봉지와 900원짜리 편의점 율무차 2잔 사서→충무로영상센터에서 무료 DVD를 보는 코스다. 하루 종일 돈 안 쓰는 ‘노 머니 데이’엔 예식장 하객 알바를 뛰어 끼니를 해결한다!

어느 세대이건 청춘은 가난했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77)는 젊은 작가와 나눈 필담을 묶은 책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 취업도 연애도 포기했다는 하소연에 “우리 땐 더 가난했다”고 했다. 옷이 없어 군복을 염색해서 입었고, 서울대를 졸업하고도 취직이 어려웠으며, 유학 시절 첫아이가 태어났을 땐 방을 얻을 돈이 없어 학교 기숙사 책상 서랍에 아이를 재워 키웠다는 경험담도 들려줬다.

하지만 요즘 20대는 고도 성장기를 살아온 세대와 다르다. 부모보다 더 배우고도 그만한 수준으로 살기 어려운 세대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기에 고교를 졸업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땐 모두가 힘들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독 20대에 가혹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4분기(10∼12월) 전체 실업률은 5%, 20대 실업률은 8.7%였다. 올해 1분기(1∼3월) 전체 실업률은 4.3%로 외환위기 때보다 낮아졌지만 20대 실업률은 10.8%로 오히려 늘었다.

대선 후보들은 청년들을 위해 여러 공약을 내놓았다. 공공 일자리를 늘리고, 청년수당을 주고,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매달 5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만 어렵나. 자녀 키우는 중장년들은 허리가 휘고, 노인 빈곤율도 오름세다. 그들을 위한 공약도 차고 넘친다. 파이는 작은데 먹을 사람은 줄을 서 있다. 그런데 청년 세대는 투표나 거리 시위를 통해 제 몫을 스스로 챙기기가 어렵다. 통계청의 세대별 인구 구성을 보면 40대와 50대는 각각 850만 명과 800만 명이지만 20대는 640만 명, 10대는 560만 명이다. 60대 이상은 1000만 명이다. 세대 간 표 대결의 운동장도 기울어져 있는 셈이다.

‘소수자’인 청년들을 위해서는 맞춤형 정책도 좋지만 세대 간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청년영향평가제 도입을 제안한다. 교통과 환경 영향평가제를 응용한 제도다. 대형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교통과 환경에 주는 영향을 예측한 뒤 개발로 이익을 보는 이가 이 문제의 해결 비용을 일부 부담하듯, 새로운 정책이나 예산 집행이 미래 세대에게 주는 영향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정년을 늘리고 연금을 설계할 때,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할 때 이것이 자녀 세대에 빚더미를 안겨 그들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지는 않을지 점검해야 한다.

‘외부자들’에 출연하는 안형환 전 국회의원은 11일 방송에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기원인 고대 로마에선 식민지에서 (자원을) 가져다 공짜 빵을 약속했다”며 “우린 식민지가 없다. 우리 세대의 부담을 다음 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선 후보들의 장밋빛 공약이 청년세대를 식민지화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