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빚 3900억 원 가운데 절반을 줄여주고 나머지는 연장하는 채무조정안을 최대 채권자인 국민연금이 어제 수용했다. 지난달 23일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대우조선 정상화 계획’이라며 내놓은 이 방안에 대해 사흘 전만 해도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감내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며 반대했던 국민연금이 손을 든 것이다. 정부의 부실 감독으로 부실을 더 키운 기업에 국민의 노후자금을 또 퍼준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민연금으로서는 2000년 이후 8조 원이 넘는 혈세가 지원된 대우조선에 추가 지원을 하기도, 지원을 끊기도 곤란한 입장이었다. 회생을 장담하기 힘들 뿐 아니라 2015년 10월 4조2000억 원 지원이 끝이라던 정부의 공언은 깨진 지 오래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돈줄을 끊어 대우조선이 망하면 보유채권을 90% 이상 회수하지 못하고 3조 원 규모의 수주계약까지 취소될 수 있다.
일반 기업이라면 진작 법정관리로 넘겼을 기업에 국민연금이 또 무너진 것을 경제적 판단으로만 보기 어렵다. 어제 “산은이 책임 있는 경영 정상화 의지를 나타내면서 협의점을 찾았다”고 한 국민연금의 보도자료는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산은이 책임지라는 의미로 보인다. 지난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우조선과 조선산업을 살려내야 한다”고 한 발언에 국민연금이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외풍에 휘둘리는 듯한 태도가 국민의 노후를 불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