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어린이에 구명정 양보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은 英해군 이야기
버큰헤드호 침몰사건 A.C.애디슨, W.H.매슈스 지음 배충효 옮김·북랩·2017년
백선희 번역가
20분! 이 절체절명의 짧은 시간 동안 승조원들은 함장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고 차분하게 대처했다. 탑승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구명정 세 척에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우선 태워졌다. 함장은 병사들에게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은 바다로 뛰어들어 구명정 쪽으로 가라”고 명령했지만 한 지휘관이 다시 말했다.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면 구명보트가 전복될 것이니 제자리를 지켜 달라.”
영국 화가 찰스 에드워드 딕슨이 1852년 그린 석판화 ‘버큰헤드호의 침몰’. 사진 출처 art.co.uk
책을 읽으며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는 버큰헤드호처럼 캄캄한 밤에 구조신호조차 보내지 못한 채 급박하게 침몰한 게 아니었다. 훤한 아침이었고, 배가 기울자 곧 신고가 됐고, 구조 과정이 TV로 생중계되기까지 했다.
신고부터 침몰까지 101분! 이 긴 시간 동안 선장과 선원들은 한없이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이기적이고 심지어 수상쩍기까지 했다. 배가 위태롭게 기울어진 상황에서 승객들을 선실에 대기시켜 놓고 화물 적재량부터 조작했고, 선박회사와 비밀교신을 주고받았으며, 가장 먼저 탈출했다. 구명정이나 구명슈터 하나 내리지 않았고, 퇴선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국가의 재난관리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해경의 구조는 우왕좌왕 체계 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송두리째 드러낸 사건이다.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온 그 배에서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를 찾고 나면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 규명해야 한다. 정확한 침몰 원인, 구조 과정의 문제점, 출항부터 인양까지 3년의 시간을 환히 드러내고 기록해야 비로소 참사를 끝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 영국인들이 버큰헤드호를 기억하듯이, 결코 반복하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세월호를.
백선희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