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일자리를/청년이라 죄송합니다]여섯 번째 이야기 1부 ‘노오력’의 배신
“비계인(비정규직·계약직·인턴)으로 시작해도 패자부활전 있나요?”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해 평점 3.8점(4.5점 만점)으로 졸업한 이윤재 씨(청주대 경영학과 졸)의 질문 겸 하소연이다. 그는 성공을 향한 열망이 넘쳤다. 하지만 지방 사립대 간판 탓에 정규직 입성조차 어렵다. 그는 “일단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걱정이 앞선다”며 ‘청년이라 죄송합니다’ 취재팀에 문의했다.
생애 첫 직장부터 최소 3곳 이상 계약직을 겪어 본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어떤 의미일까. 본보 취재팀은 구직자들이 많이 찾는 대형 커뮤니티에서 ‘만년 비계인’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본보가 만든 온라인 익명 제보 창구인 ‘대나무숲(angryboard@donga.com)’을 통해서도 사연을 모았다. 어렵게 말문을 연 이들은 “한국 노동시장은 카스트(인도의 신분제) 같다. ‘노오력’해도 신분을 바꾸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백수로 지내느니 계약직이라도 하면 좋게 봐 줄 거라 생각했죠.”
계약직을 5번 거치고 또 계약직으로 일하는 영업직 임모 씨(31). 중위권 대학을 졸업한 그는 2012년부터 정규직 공채 원서를 수백 장 썼다. 구직 기간이 길더라도 경력이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면접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무슨 계약직을 이렇게 많이 했어?” 그들 눈에 임 씨는 정규직에 못 들어가 비계인만 맴도는 ‘중고 신입’일 뿐이었다.
계약직 생활은 드라마 ‘미생’ 같았다. 한 임원은 “술도 못 먹는 게 정규직을 바라느냐?”며 맥주잔(500cc)에 소주를 가득 부어 먹였고, 노래방에서 고객사 접대를 할 땐 춤을 춰 보라고 시켰다. 영혼을 팔 듯 복종했지만 고대했던 정규직 전환은 없었다.
한국에서 첫 직장은 족쇄처럼 따라다닌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첫 직장이 비정규직인 사람 중 40%는 7∼10년 지나도 비정규직 또는 무직으로 살아간다. ‘비정규직 3년 뒤 정규직 전환율’ 역시 22.4%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3.8%의 절반이 안 된다. 임 씨는 “비정규직에 첫발을 내디딘 내게 패자부활전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카스트 하부인 ‘비정규직’에도 계급이 있다. △본사 직접 고용 △파견·하청 등 간접 고용 △특수 고용(대리운전 등) 순이다. 간접고용된 직원들은 본사 계약직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과 처우에서 적잖은 차별을 받는다.
패션학과를 졸업한 김혜연(가명·25) 씨는 간접고용 계약직을 3곳 거쳤다. 업계 특성상 파견·하청 구인 공고가 대부분이라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 중엔 유명 패션그룹 H사가 있었다. 당시 그의 연봉은 세전 1800만 원. 또 다른 파견직은 1500만 원을 받았다.
일을 배우기 위해 박봉을 감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짐 정리, 옷핀 꽂기 같은 허드렛일만 시켰다. 초과 근무를 시키면서 “파견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뻔뻔한 상사도 있었다. 그는 돈 때문이 아니라 차별 때문에 서러웠다고 했다.
이는 계약직 대부분이 안고 사는 고민이다. 취업 포털 알바몬이 계약직 897명에게 ‘계약직이라 서러운 순간’을 설문 조사한 결과 ‘똑같이 일하고 정규직만 대우받을 때’(23.0%)가 1위에 올랐다. ‘중요한 일에서 제외될 때’(11.6%), ‘어차피 관둘 사람 취급할 때’(10.9%)라는 답도 있었다.
“괜히 중(中)규직이겠어요?”
무기 계약직인 전모 씨(29)는 스스로 ‘중규직’이라 부른다. 2007년 시행된 기간제법에 따라 2년간 일한 비정규직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기회를 얻지만, 근로조건은 비정규직과 비슷하다. 연봉, 승진 모두 정규직 같지 않은 정규직…. 그래서 ‘중규직’이다. 전 씨는 특히 승진 기회에 가장 불만이 크다. 똑같이 일해도 중규직은 대리급 이상은 올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봉 상승도 기대하기 힘들다. 10년 넘게 일한 무기 계약직 선배들이 3년 차 대리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걸 보면 걱정이 더 커진다. 그는 “평생 중규직으로 사느니 30세 되기 전까진 몰래 정규직 취업 준비를 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 계약직은 분류상 정규직이더라도, 비정규직이 당하는 을(乙)의 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계약직’이라는 꼬리표가 바뀌진 않기 때문이다. 중규직인 이모 씨(29)는 지난해 상사로부터 술병의 상표를 보인 채 술을 따랐다며 혼이 났다. “네가 제일 잘해야 되는 일이 이런 거야”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는 “내가 정규직 사원이어도 이런 말을 했겠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대나무숲에 모인 청년 비계인들의 한탄은 근본적으로 좋은 일터가 부족한 한국 ‘노동 카스트’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 준다. 2015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노동정책설계자 데이비드 와일은 이를 가리켜 ‘균열 일터’라고 표현했다. 핵심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청·파견·계약직으로 채워 언제든 잘라 버리는 잔인한 경영 방식이다. 이 청년들의 이야기가 이윤재 씨에게 답이 됐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말…. 100% 인정해요. 그 대신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우리들은 이미 눈을 낮췄거든요.”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