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남은 한 아내가 “어딘가에 진짜가 있을 것이다. 찾다 못 찾으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 하고는 머리를 깎고 중의 복색을 하였다. 걸식을 하며 몇 년 동안 온 나라를 헤집고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 안변(安邊)의 황룡사(黃龍寺)에 이르러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여인은 하늘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노승이 다가와 무슨 사연인지 물으니, 여인은 노승에게 전후 사정을 다 말하였다. “몇 년을 헤매었으나 끝내 못 찾았으니 내일 아침에 무덤 앞에 가서 죽으려 합니다.” 노승은 슬픈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대의 철석같은 마음은 하늘이 보살필 것이오.”
다음 날 여인이 떠났다. 노승도 서둘러 길을 나서더니, 그 고을에 이르러 관청에 나아가 말했다. “제가 원래의 아들입니다. 그자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자는 노승을 보더니 말문이 막혔다. 노승이 말하였다. “이놈은 저의 제자로 30년을 따라다니면서 제 사정을 다 듣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그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이희지(李喜之·1681∼1722) 선생의 ‘산남열부전(山南烈婦傳)’입니다. 한 인간의 악행이 빚어낸 일가의 참극을 보면서, 왜곡된 진실을 밝혀내고 바로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합니다. 온갖 난관을 뚫고 마침내 진실을 밝혀낸 여인을 ‘열부(烈婦)’라고 예찬하며 선생이 하신 말씀. “천하에 어려운 일은 없으니, 오직 뜻을 품은 사람이 무섭다(天下無難事, 只파有心人).”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