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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꼴찌 삼성’… KBO리그가 잃은 것

입력 | 2017-04-19 03:00:00

왕조의 몰락이 아쉬운 건 아니다 무기력한 모습이 안타까울 뿐
우승해도 목마르던 야성을 잃고 ‘돈으로 선수 산다’ 욕을 먹어도…
리그 흥행 이끌던 특색을 잃었다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 다른 팀도 아닌 삼성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17일까지 3승을 거두는 동안 11번을 졌다(승률 0.214). 순위는 10개 팀 중 10위다.

불과 몇 해 전까지 KBO리그는 ‘삼성 왕조’가 지배했다. 2011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시작으로 내리 4년 연속 KBO리그의 최정상에 우뚝 섰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트로피를 두산에 내줬지만 그해 정규시즌 우승은 삼성의 차지였다.

이상 조짐이 나타난 것은 작년부터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9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지금 추세라면 삼성이라는 팀이 생긴 지 35년 만에 최하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야구계에는 “올라가긴 힘들어도 내려오는 건 한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그간 최상위권에 있었던 탓에 삼성은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좋은 자원을 뽑지 못했다. 팜(2군과 잔류군)에도 유망주가 많지 않아 암흑기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

삼성 야구의 몰락이 아쉬운 게 아니다. 야구는 잘할 수도, 반대로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처럼 무기력한 삼성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삼성의 위기는 KBO리그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삼성은 특별했다. 1등이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했기에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메이저리그의 선진 수비 기법을 도입했고, 경산 볼파크라는 선수 육성 시설을 만들었다. 팀 전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외국인 선수 선발을 위해 미국에 스카우트를 상주시키기도 했다.

원년부터 삼성은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았다. 온갖 노력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자 라이벌 팀 해태 감독으로 9번이나 우승을 이끈 김응용 감독을 데려와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모든 면에서 1등을 추구하던 삼성의 푸른색 유니폼은 소속 선수들에게는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올린 만큼 연봉과 보너스로 보상을 받았다. 1990년대 초 쌍방울의 지명을 받은 양준혁은 삼성에 입단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삼성은 특별한 한 팀이 아닌 10개 팀 중 한 팀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삼성만의 강렬한 색채를 잃어버린 채 평범해져 버렸다.

예전 삼성은 우승을 하고도 곧바로 다음 해 우승을 꿈꾸는 팀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9위를 한 삼성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겨울을 났다.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 차우찬이 LG로 간 자리를 우규민으로 메웠고 2년 전 NC로 이적한 3루수 박석민(NC)의 자리에 이원석을 데려온 정도다. 다른 팀들이 현역 메이저리거들로 외국인 선수를 채울 때 삼성은 상대적으로 몸값이 싼 선수들을 데려왔다. 몇 해 전부터 삼성 산하 스포츠 팀들은 성적 못지않게 ‘경영 효율’을 중시하고 있다.

한때 FA 시장이 열리면 다른 구단들은 삼성의 눈치부터 봤다. 삼성의 움직임이 전체 FA 시장 판도를 결정하곤 했지만 이 모든 게 다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돈으로 성적을 산다”는 비난에 시달려온 야구 팀들이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가 대표적이다. 이런 구단들은 팬과 안티 팬이 극명하게 갈린다. 갈등이 있는 곳에 흥미가 생기고, 이는 흥행으로 연결되곤 한다.

KBO리그에서 비슷하게나마 그 역할을 했던 게 삼성이었다. 그런 삼성이 빛을 잃으면서 KBO리그도 중요한 특색 하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기고도 배고파했던 삼성의 야성이 그립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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