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 이어 외국인 규제 행정명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사에서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를 실천할 2개의 큰 원칙으로 ‘미국산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Buy American, Hire American)’를 천명했다. 그는 18일 외국인의 미국 내 취업을 어렵게 하는 내용의 ‘H-1B 비자’(외국인의 전문취업 비자) 발급 요건 강화와 관련 단속 규정을 담은 행정명령서에 서명하면서 ‘미국산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라는 별칭을 붙였다. 야당인 민주당과 실리콘밸리 등에선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에 이어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강한 반발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위스콘신 주의 커노샤에 있는 공구 제조업체 ‘스냅온’ 본사를 방문해 △H-1B 비자를 고학력 및 고임금의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선적으로 발급하고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하거나 관급 공사를 할 때 국산품 구매를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위스콘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승리를 안긴 러스트벨트(낙후된 공업지대) 중 하나다. 그는 서명식에서 “(H-1B 비자 같은) 출입국 시스템의 (일부) 문제들 때문에 모든 계층의 미국인 노동자가 외국에서 데려온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잃고 있다”며 “H-1B 비자는 가장 숙련된 고임금 지원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현재의 무작위 추첨 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H-1B 비자는 매년 8만5000건이 발급되는데 신청 건수는 20만∼30만 건에 이른다.
USA투데이는 “행정명령의 취지는 앞으로 연봉 14만 달러(약 1억5960만 원)를 받는 외국인과 7만 달러(약 7980만 원)를 받는 외국인, 학사 출신과 박사 출신이 지원했을 때 14만 달러 연봉자와 박사에게 H-1B 비자를 우선 발급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만큼 ‘미국인 일자리 보호’를 이유로, H-1B 비자를 받고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의 자격이 한층 강화되고 결국 외국인의 취업 기회를 크게 축소시킬 것이란 얘기다. 현재 H-1B 비자로 미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 전문인력은 60만∼9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 의원(뉴욕)은 “(반이민 행정명령처럼) H-1B 비자 행정명령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일종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단 하나의 일자리도 새로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력 비난했다.
NYT는 “미국 경제의 원동력인 실리콘밸리 창업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을 통해 이뤄진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미국 기업 내 외국인 노동자 수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국 경제 전반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보기술(IT) 관련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로버트 앳킨슨 회장은 “H-1B 비자 요건 강화로 IT 기업들이 우수한 외국인력을 미국 내에서 구하기 어려워지면, 결국 그런 인력을 찾아서 미국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