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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떼여 속앓이? 근로계약서 확보하고 3년 내에 신고하세요

입력 | 2017-04-20 03:00:00

[유성열 기자의 을로 사는법]<4>체불임금 받아내는 법 A to Z




유성열 기자

지난달 26일 성동조선해양의 1차 협력업체인 T사 대표 황모 씨(53)가 임금 체불(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부산지방고용노동청 통영지청에 구속됐습니다. 황 씨가 떼먹은 임금은 무려 2억8000만 원. 피해 근로자는 142명에 달했습니다.

황 씨의 수법은 대범했습니다. 성동조선해양으로부터 받은 공사 대금 2억6000만 원을 개인 계좌로 몰래 이체한 뒤 2년간 잠적했습니다. 피해자들이 황 씨를 고소하고, 통영지청이 소환을 통보하자 고소를 취소하도록 일부 근로자를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황 씨는 공사 대금을 배우자 생활비와 빚 상환 등에 쓰느라 임금을 주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자금을 몰래 은닉하고 또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오영민 통영지청장은 “소환 통보에 응하지 않은 데다 청산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죄의식이 전혀 없는 것 같아 구속 수사를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 체불임금 1조 원 시대 대처법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근로자들의 체불임금 총액은 1조4286억 원으로 역대 최대였습니다.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되고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체불임금 ‘1조 원’ 시대가 2009년부터 7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도 경기가 쉽게 나아지지 않을 거란 전망 때문에 체불임금이 더 증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체불임금이 증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황 씨와 같은 ‘악덕 사업주’ 때문입니다. 임금 체불을 강하게 처벌하는 일본의 연간 체불액은 한국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임금을 가볍게 여기고, 고의로 체불하는 사업주가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상습, 고의적인 임금 체불 사업주를 무조건 구속하는 원칙을 세우는 등 강하게 단속 중입니다. 과거에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합의하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21명이나 임금 체불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그렇다고 형사처벌에만 기댈 수는 없습니다. 정부 단속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근로자들이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사업주를 상대로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몇 차례 독촉에도 임금을 줄 생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면 노무사 등 전문가와 상담한 후 내용증명을 보내고 근로계약서와 근무일지 등을 확보해 놓는 게 좋습니다.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증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주가 내용증명을 받고서도 차일피일 지급을 미룬다면 고용부에 진정을 내야 합니다. 고용부 홈페이지(www.moel.go.kr)나 지방고용노동청에 낼 수 있습니다. 지방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은 노동법 위반 사건을 다루는 일종의 특별사법경찰관입니다. 이들은 사실관계를 조사한 후 임금 체불 혐의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면 임금 지급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사업주가 명령을 이행하면 형사처벌 없이 사건은 종결 처리됩니다.

다만 임금채권은 보호 기간이 3년으로 짧기 때문에 3년 이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채권 청구권이 소멸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만약 사업주가 지급 명령을 무시한다면 근로감독관이 고의성이나 상습성 등을 수사한 뒤 형사 입건하고 검찰에 송치합니다. 임금 체불 혐의가 입증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이런 방법까지 다 동원했는데도 사업주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민사소송으로 가야 합니다. 민사소송에서는 일단 사업주가 재산을 숨기지 못하도록 가압류 신청을 하는 게 유리합니다. 소송에서 이기면 법원의 강제집행으로 체불임금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 체당금 제도 적극 이용해야

최근에는 경영난으로 회사가 도산해 잠적하는 사업주도 많습니다. 이럴 땐 ‘체당금’ 제도를 이용하면 됩니다. 사유를 적어 지방고용노동청에 체당금 지급을 신청하면 국가가 일부를 대신 지급하고 추후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받아내는 제도입니다.

정부는 올해 2월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내놨습니다. 앞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상습 체불 사업주는 체불금과 같은 수준의 부과금을 부과하고, 근로자와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처벌할 방침입니다. 또 체당금 신청부터 지급까지 걸리는 기간을 30일(현재는 약 70일)로 단축하고, 사업주 파산 여부와 관계없이 우선 지급할 수 있는 체당금의 한도를 3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인상했습니다.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에 대한 생계비 융자 금리도 2.0%로 0.5%포인트 내렸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무조건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악덕 사업주는 ‘철퇴’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검찰의 판단입니다. 다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들에게도 임금 체불은 엄연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지급하도록 계도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부는 또 임금을 체불한 영세 사업주들을 위해 융자도 해주고 있습니다. 2.7∼4.2%였던 금리도 2.2∼3.7%로 낮췄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으니 사업주들도 근로자의 ‘생명’인 임금을 소중히 생각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