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
‘국가별 ICT발전지수(IDI)’에서 한국이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지난 7년간 한 해를 제외하곤 줄곧 1위다. 반면 노동시장 유연성, 기술수준 등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세계경쟁력지수 평가지표를 활용한 최근 UBS보고서에서 우리의 ‘4차 산업혁명 준비순위’가 25위에 머물렀다. 밭은 좋은데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다는 뜻이다. 1등의 인프라를 보유하고, 열정과 노력을 쏟는데도 변화와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추진 시스템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추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분야로 사이버보안을 꼽을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지능정보기술이 가져올 기대감에 가려져 AI 기반 자동해킹, 기존 암호체계 무력화, IoT 기기 좀비화 등 심각한 미래 보안 위협에 대한 경각심은 떨어진다. 가까운 미래에 사이버공격이 인공심장박동기, 자율주행차로 확산되고,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을 받는 시대가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장밋빛 기대가 핏빛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정교한 보안체계를 강구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국가 차원의 사이버보안 전략을 내놓으며 정보보호 예산을 늘려 가는데, 유독 우리만 올해 예산이 전년보다 277억 원 줄어든 것도 문제다. 사이버보안은 북한 등 상시적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는 일이면서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산업인데도 이와 같은 중요성을 외면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보안 중요도’에 따라 예산, 인력, 제도는 물론이고 소통과 협력의 권한을 확대하는 국가 차원의 조정에 착수해야 한다. 또 과거 관(官) 주도형 산업발전 때 높인 간섭과 통제의 수준을 낮추고 민간생태계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간섭과 규제도 정리해야 한다. 이 봄, 우리 경제의 마지막 성장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하는 거짓’과, ‘되지 않으면서 되는 척하는 눈속임’과,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허세’의 가지들을 잘라내고 줄기가 튼튼히 자랄 수 있는 생육환경으로 재정비하자. 사이버보안이라는 줄기 없이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헛된 춘몽(春夢)이다.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