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스포츠부 기자
요즘 국내 스포츠 감독들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2014년 프로농구 10개 구단 감독의 평균 나이는 50.6세였다. 현재 평균 연령은 46.8세다. 아무도 교체되지 않았다면 세 살을 더 먹어 53.6세가 됐겠지만 3년 사이에 네 살 가까이 줄었다.
농구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시즌을 마치고 사령탑을 재정비한 프로배구 남자부 7개 구단 감독의 평균 연령은 46.4세로 농구보다 더 젊다. 3년 전에는 51.4세였다. 프로배구 남자부 감독들의 평균 나이는 2015∼2016시즌을 앞두고 43.1세로 뚝 떨어졌다. 신치용, 김호철, 강만수 등 1955년생 베테랑 감독들이 한꺼번에 물러난 자리를 젊은 지도자들이 채웠기 때문이다. 김호철 감독의 후임으로 현대캐피탈을 맡은 최태웅 감독은 당시 30대였다.
팀 분위기를 좋게 이끌며 성적까지 좋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어느덧 프로농구 최고령 지도자가 된 모비스 유재학 감독(54)은 35세에 사령탑이 됐다. 삼성화재 창단 감독으로 부임해 20년 동안 실업배구 슈퍼리그 8연패, 프로배구 V리그 7연패를 포함한 8회 정상 등 우승이 연례행사였던 신치용 삼성화재 단장도 당시로는 파격적인 40세에 팀을 맡았다. 경험 부족이라는 우려 속에 사령탑이 된 최태웅 감독(41)도 이번 시즌 팀을 우승시켰다.
걱정되는 것은 겉으로 ‘세대 교체’를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싸고 고분고분한 젊은 감독’을 선택하는 구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배구 모 구단 단장은 몇 년 전 “우리 팀은 감독이 내 말만 잘 들으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는 말로 배구인들의 공분을 샀다. 물론 그 팀은 아직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최근 아마추어 스포츠 관계자로부터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서울시청을 비롯해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산하 스포츠 팀 감독들에게 정년제 도입을 통보하며 60세가 넘으면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감독은 계약직이다. 정해진 기간 성과가 좋으면 재계약을 하고 그렇지 못하면 떠나는 신분이었다. 이제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내도 나이가 차면 떠나야 한다. 공무원은 정년퇴직 후에 연금을 받지만 계약직으로 살아온 지도자들은 그런 것도 없다. 편의주의 행정 탓에 여전히 능력 있는 지도자들이 생계 위기에 몰릴 판이다.
한 소설 속의 주인공은 ‘늙음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정년 무풍지대’였던 스포츠 지도자들에게 이제 늙음은 벌이다. 100세 시대가 다가오기에 더 큰 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