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금융당국 자구안 압박에 부산 신항만 터미널 지분 매각 회사는 살렸지만 ‘족쇄’로 돌아와
김도형·산업부
최근 만난 현대상선의 한 임원은 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항 문제’를 해결하라는 특명을 받았는데 뾰족한 해결책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4월은 해운사가 1년 운임을 결정하는 시기다. 지난해보다 운임을 높이는 협상이 막바지 단계인데 힘이 안 난다고도 했다.
그가 말하는 ‘부산항 문제’의 속내는 이렇다. 원래 현대상선은 부산 신항만 HPNT 터미널의 지분 50%+1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싱가포르 국적의 항만 운영사 PSA에 40%+1주를 지난해 5월 팔았다. 그렇게 해서 800억 원을 마련했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지난해부터 2023년까지 PSA에 연간 70만 TEU(1TEU는 길이 6m짜리 컨테이너 1개) 물량 공급을 보장하고 부산항에서 항만 관련 사업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상선은 올해 부산항 예상 물량(150만 TEU)을 모두 HPNT 터미널에서 소화할 경우 인근 터미널의 환적 시세와 비교해 330억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상선에 지금 상황은 ‘회생 기업의 저주’라고 부를 만하다. 물론 현대상선이 ‘독소 조항’이라고 얘기하는 조건들이 PSA 입장에서는 당시 800억 원을 쓴 이유일 수 있다. 서로가 합의한 계약이란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국가 예산을 투입해 살려 놓은 해운사다. 회생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족쇄가 되는 상황 앞에서 과거의 결정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다.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생존’이 아니라 생존 이후를 염두에 두고 핵심 자산을 적절히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산을 팔 때 팔더라도 협상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현대상선은 약속 물량을 제외한 환적 물량은 해외 항만에서 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PSA 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최근엔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가 PSA의 한국 대표를 만나기도 했다. 부산항 문제도 서로 ‘윈윈’하는 해법을 찾아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