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단독]‘위법’이 된 후배들의 정년퇴직 선물

입력 | 2017-04-26 03:00:00

서울대병원 전현직 교수 18명 ‘청탁금지법’ 위반 무더기 적발




서울대병원 소속 전현직 교수 18명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한꺼번에 적발됐다.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 시행 후 단일 사건에 20명 가까이 연루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정년퇴직하는 교수에게 감사의 뜻으로 돈을 모아 고가의 골프채를 선물했다가 입건됐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은 이를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교수들은 관례에 따라 선의로 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700만 원짜리 ‘퇴직 선물’이 말썽

서울 혜화경찰서는 전 서울대 의대 교수 A 씨와 같은 과 후배 교수 등 총 18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최근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다고 25일 밝혔다. 올 2월 퇴직한 A 씨는 현직 때인 지난해 12월 2차례에 걸쳐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 소속 후배 교수 17명으로부터 일본산 ‘마루망’ 골프 아이언 세트와 드라이버 1개를 받았다. 가격은 약 730만 원.

얼마 뒤 A 씨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이 사실을 권익위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건을 이첩 받은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교수들은 퇴직 선물이 의대의 오랜 전통이라고 해명했다. 정년 퇴직하는 교수에게 후배 교수들이 돈을 걷어 선물을 한다는 것이다. 평소 월급에서 일정액을 조금씩 모으고 모자란 돈은 더 걷기도 한다는 것. A 씨에 앞서 정년퇴직한 교수들도 황금열쇠 등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이런 전례에 비춰 A 씨가 받은 선물이 비싼 편이 아니라는 게 교수들의 해명이다. A 씨의 후배 교수 17명은 골프채 선물을 위해 1인당 평균 50만 원 가까이 냈다.

선물을 주고받을 당시 A 씨는 “받아도 되는 것이냐”며 사양했다. 청탁금지법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배 교수들은 “청탁금지법 교육을 받았는데 핵심은 청탁과 대가성 등의 문제다. 설마 정년퇴직 선물까지 문제를 삼겠느냐”며 선물을 건넸다. A 씨는 “법에 저촉되는 것인 줄 알았으면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골프채 값에 해당하는 돈을 과 사무실에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 관례라도 100만 원 넘으면 위반


교수들은 관례라고 해명했지만 권익위와 경찰은 분명한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의견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1회에 100만 원을 넘는 선물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100만 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을 때는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준 경우 받은 금품의 2∼5배에 이르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과태료와 형사처벌이 적용된다. 서울대 의대 교수였던 A 씨도 이에 해당한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퇴직 이전에 받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교수들이 A 씨가 퇴직한 2월 말 이후 선물을 줬으면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높았다. 청탁금지법은 직무와 관계된 인물들이 주고받는 금품을 모두 대가성으로 본다. A 씨가 퇴직 후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이때 선물을 줬으면 처벌 대상이 아닌 것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A 씨가 퇴직한 뒤 병원을 차리거나 병원과 관련된 일을 한 상태에서 금품이 오갔다면 이 역시 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 처벌 수위에 관심

앞으로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기소 여부가 결정된다. 이들이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될 경우 처벌 수위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존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례와는 성격과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을 위반하면 최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낼 수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번과 같은 사건은 처음 있는 일이라 추후 법원의 판결을 봐야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 관계자들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기다리겠지만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년퇴직 선물에도 적용되는 청탁금지법이 가혹하다는 것이다. A 씨와 후배 교수들은 경찰 조사 이후 연락도 뜸해진 상태라고 한다. A 씨는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제자이기도 한 후배들이 정년퇴직 선물을 주는 일에까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순수한 취지로 한 일이지만 법원의 판결에 따라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김예윤·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