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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 40兆만 들면 다행… 공약 다 이행하려면 재정 거덜날 판”

입력 | 2017-04-26 03:00:00

[선택 2017/대선 D-13]대선후보 부실한 공약가계부 논란




“40조 원만 들어가면 다행이게요.”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자체 분석해 내놓은 공약 소요 재원에 익명을 요구한 기획재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별다른 근거와 자료도 없이 조 단위의 숫자를 제시하면서 납세자들의 부담이 1인당 평균 수십만 원씩 늘어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실한 소요 재원 추계를 토대로 새 정부가 출범할 경우 ‘공약 가계부’ 내용 일부가 어긋나 홍역을 치른 박근혜 정부 초기보다 더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요 공약 상당수는 국민의 호주머니와 직결된 복지 사업이라 ‘공약 이행’이라는 정치적 명목으로 밀어붙일 경우 국가 재정 전체를 일그러뜨릴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 ‘조 단위’ 숫자부터 어긋나는 추계

기초연금 인상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각 후보가 노인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내놓은 공약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추계와 분석도 없이 조 단위의 예산 소요액을 대형마트 가격표처럼 무차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그나마 공신력이 높은 자료는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이다. 지난해 남인순(더불어민주당), 김광수 의원(국민의당) 등이 기초연금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제출하면서 첨부한 자료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연금액을 국민연금 A값(직전 3년간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의 월평균 소득)의 15%로 높이자는 전혜숙 민주당 의원 안과 유사하다. 예산정책처는 전 의원 안을 시행하는 데 8조 원 넘게 들어간다고 밝혔다. 남 의원 안에는 무려 11조4821억 원이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가정(假定)을 전제로 전망해야 하는 연금 예산의 특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고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향후 기대수명과 장래인구추계 등을 토대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연금 연계 폐지 등에 따라 각 후보 전망치보다도 연 5조 원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 8조 원가량만 더 들어가도 국내 근로자 1700만 명이 1인당 50만 원 가까이 세금으로 더 내야 하는데, 이마저 향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부실한 추계마저도 갖추지 못한 후보가 많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후보 모두 시간당 1만 원으로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소요 예상액은 내놓지 않았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면 연 1조5193억 원이 들어간다. 사병 월급을 최저임금의 40∼50%까지 높일 경우 최소 연 2조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지만 이를 언급한 후보는 없다. 안 후보는 공약 전체 소요액(연 40조9000억 원)만 밝혔고, 홍 후보는 이조차 내놓지 못했다.

○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게 자료 제시해야”

정치권에서는 ‘선거가 조기 대선으로 치러지는 탓에 준비 기간이 부족했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복지공약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이나 총선 때 나왔던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기초연금 30만 원 인상 △사병 월급 상향, 국민의당의 육아휴직 대체근로자 고용 비용 지원 등은 지난해 총선 때부터 나온 공약이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비용 추산은 해놓지 않았다. 민주연구원(민주당), 여의도연구원(자유한국당) 등의 싱크탱크가 있지만 공약 분석의 근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등 국회 정책연구기관에 맡겨도 되지만 이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해외 선진국들에서는 후보들이 선거 공약 비용을 계산해 국민들에게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주요 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100여 쪽에 이르는 공약집을 발간해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재원 마련책을 담는다. 네덜란드는 정부 기관인 중앙계획국(CPB)이 직접적인 소요 비용과 정책의 기대 효과를 내놓는다.

전문가들은 굵직한 복지·사회간접자본(SOC)에 한해서라도 각 정당이 예상 소요 예산과 그 산출 근거를 미리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큰 예산이 들어가는 복지 정책의 경우 비용을 산정한 최소한의 방식은 명시해야 유권자들이 포퓰리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예산 추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종=천호성 thousand@donga.com·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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