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권이 들어서도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질까? 동아일보DB
이형삼 전문기자
“2015년 1월 우 전 수석 임명 직후 검찰 안팎의 다양한 시각을 전한 기사였다. ‘과도하게 앞뒤 안 가리는 수사’ ‘너무 직선적이고 배려심이 없다’ 같은 부정적인 내용도 있는데 딱 그 대목만 인용했다. 당시는 우 전 수석 관련 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데다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고 법조를 출입한 적도 없다. 이런 식으로 ‘적폐 언론’ 블랙리스트를 만들 건가.”
고위공무원 B 씨는 진보정권 출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간적 갈등’이 크다고 털어놨다.
보건복지부 직원 C 씨는 “그간 전면에 내세웠던 보건·의료 부문 대신 복지·인구 부문을 간판으로 내걸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잔뜩 벌여놓은 보건·의료 사업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이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박근혜 정부는 ‘바이오헬스 7대 강국’을 목표로 제약, 의료기기, 화장품 투자를 확대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대리처방, 성형시술 의혹이 드러나고 진보성향 대선 후보들이 사회서비스, 저출산대책 등을 강조하면서 보건·의료는 도매금으로 찬밥 신세가 될 처지다. 의료·정보통신기술(ICT)·생명공학기술(BT) 융합사업처럼 정치논리를 떠나 긴 안목으로 추진할 일도 뒤로 밀려날 공산이 크다.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발을 빼려 한다는 건 이미 구문(舊聞)이다. 중소·신생기업과 벤처 생태계를 공유하는 ICT 등 일부 업종 외엔 가뜩이나 귀찮은 ‘재능기부’쯤으로 여기던 차였다. 대기업 임원 D 씨는 “우선 ‘창조경제’라는 이름부터 바꾸고 눈치껏 출구전략을 찾을 요량”이라고 했다. 대기업이 손을 떼면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단순 임대공간으로 전락하기 쉽다. 대기업의 기술, 관리, 마케팅 지원을 받으며 창조경제 콘셉트에 맞게 조직과 투자를 정비해온 중소기업들엔 날벼락이다. D 씨는 “가능성이 보여도 당장 실적이 없으면 미운털 박히기 전에 접는 게 낫다”며 “영화 ‘광해’와 ‘변호인’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 찍힌 CJ가 뒤늦게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으로 우파에 어필하려 했지만 탄압을 못 피했다”는 예를 들었다(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영화 투자는 개봉하기 수년 전에 결정되기에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A, B, C, D 씨가 우려하는 상황이 정말 현실이 될까. ‘적폐 청산’ 구호도 없앴다는데 이들이 너무 민감하게 예단하는 건 아닐까. 청와대와 정치권, 공무원 사회를 두루 경험한 E 씨의 전망을 들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문재인도 안철수도 119석, 39석으로는 국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정치는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안보, 외교가 눈앞의 현안이지만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장기판에서 차기 정부의 역할은 미미하다. 이런 마당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놓고 좌향좌 스탠스를 취하면 태극기부대가 거리로 뛰쳐나온다. 경제?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가 나올 수 없거니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이슈라도 터지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물론, E 씨의 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