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사회부 기자
처음에는 ‘농담을 하나’,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의 표정은 진지했다. “운동이든 산책이든 여행이든 무엇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해소 방안을 찾아보십시오.” 약은 처방도 해주지 않았다. 엉뚱한 진단에 ‘별 황당한 의사가 다 있다’며 의원 문을 나섰다.
당시에는 초보 엄마, 초보 기자로서 어려움이 많을 때였다. 밤에 아이가 잘 자지 않으니 수면 부족으로 낮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서투르게 작성한 기사를 출고하고 나면 회사 선배의 지시 사항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꾸지람도 듣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크다 보니 휴대전화 화면에 뜨는 회사 전화번호 앞자리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혼비백산했다.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였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속 녹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난해 기준 1인당 생활권 녹지 면적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어린이나 노인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의 작은 공원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시도 생활 속 녹지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에 비하면 시민 모두가 누리는 ‘녹색 복지’는 여전히 ‘홀대’받는다. 이른바 녹화사업에 서울시가 책정한 예산은 전체 서울시 예산의 1%인 연간 3500억 원 정도. 이 중 1000억 원은 이전에 공원용지로 지정된 사인(私人)의 땅을 사들이는 데 쓰인다. 과거에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정만 해놓았다가 지금에서야 비싼 땅값을 내고 계속 공원으로 유지하는 값이다. 또 이 예산으로는 공원을 늘리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데 급급한 수준이어서 변화를 체감하지도 못한다. 이런 실정에 체계적인 수종(樹種) 관리를 하라거나 눈을 즐겁게 하는 멋진 공공정원을 만들라는 요구는 꿈같은 이야기다.
꽃과 나무를 심고, 공원을 만드는 것을 사치로 여기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잠시나마 빽빽한 건물 사이 아스팔트 위에서 느끼는 자연의 치유 효과는 크다. 푸른 나무와 꽃을 보고 걸으면 머릿속 복잡함과 화가 발끝으로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때 기자는 은평구 불광동 출입처 인근 근린공원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벤치에 앉아 새와 꽃을 보며 평화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두통은 시간이 지난 후 사라졌다. 진단은 옳았다. 그 의사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