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꽃길, 숨쉬는 서울]<1> 주민이 만드는 녹지
《 서울에 사는 많은 외국인은 어디든지 30분만 차를 타고 가면 울창한 산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워한다. 그러나 출퇴근길, 등하굣길 같은 일상 공간에서는 녹지(綠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서울시의 ‘1인당 생활권 녹지 면적’은 5.79m²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인 9m²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건물과 도로로 가득 찬 도시의 생활공간에 녹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주민들이 나서서 이를 가능케 하는 ‘작은 기적’은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 같은 푸른 변화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
담장을 허물고 꽃과 나무를 심은 서울 강북구 ‘인수봉 숲길마을’(왼쪽 사진)과 담 밑 공간에 화단을 조성한 성북구 정릉 ‘교수단지’의 주택.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눈꽃나무의 집, 무궁화의 집, 매화의 집….’ 24일 찾은 서울 강북구 인수동 516번지. 길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집집에 이런 이름표가 붙어 있다. 이름만이 아니다. 이팝나무와 무궁화, 매화나무가 좁다면 좁은 마당을 빼곡히 채웠다. 담장을 허물어 누구나 화단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은 집도 많다. 고급 전원주택단지 같은 느낌을 풍긴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대부분 집이 꽤나 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민이 주도하는 소규모 도시녹화 사업이 서울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동네 녹지 조성을 위한 주민 커뮤니티는 500개가 넘는다.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천편일률적 녹지 조성 사업과 달리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동네의 특성에 맞는 녹지를 만들어낸다. 도로변 꽃밭과 텃밭, 소규모 공원같이 다양하다.
1960년대 서울대 교직원조합이 처음 국가로부터 사들이면서 이름이 붙은 성북구 정릉동 599번지 ‘교수단지’ 마을도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뜻으로 이곳 주택의 담벼락에 꽃을 내걸었다. 그런데 재개발이 무산된 후에도 주민들은 하나둘 자기 집 담벼락 밖에 미니 화단을 조성해 ‘꽃길’을 만들었다. 지금은 마을 밖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구경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주민 모임 ‘정릉마실’을 이끌고 있는 김경숙 씨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길에다 꽃 심어서 뭐 하냐’ ‘누가 관리할 거냐’는 반응을 보이다가 예쁘게 핀 꽃을 보고는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각자의 정원을 서로 오가기 편하라고 문을 열어두기도 하고, 행사를 열어 초대하기도 한다. 마을 경관 개선과 함께 주민 공동체 회복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