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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카페]트럼프의 승리 아닌 클린턴이 패배한 美대선

입력 | 2017-04-28 03:00:00

수전 보르도 ‘힐러리 클린턴의 몰락’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선거가 아니라,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선거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직후 큰 충격에 휩싸인 미국 진보 진영에선 이런 평가가 나왔다. ‘미국 역사상 가장 잘 준비된 대통령 후보’(클린턴 전 국무장관)가 ‘성차별, 인종차별 막말을 일삼는 아웃사이더’(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상 못한, 어이없는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수전 보르도 켄터키대 여성학 교수의 신간 ‘힐러리 클린턴의 몰락(The Destruction of Hillary Clinton)’은 그 패배의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한다. 보르도 교수는 ‘몸에 관한 페미니즘(남녀평등주의) 이론의 고전’으로 평가받은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Unbearable Weight)’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

클린턴 전 장관은 최근 한 여성 행사에 참석해 자신의 낙선에 영향을 준 요소로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을 포함한 여성 혐오 현상 △러시아와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선거 개입 △선거 막판 미 연방수사국(FBI)의 e메일 스캔들 재수사 결정 등을 꼽았다. 보르도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공화당의 마녀 사냥 △미디어의 왜곡된 보도 △경선 경쟁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효과’ △젊은 밀레니얼 세대의 외면 등도 지적한 뒤 “어느 한 요인 때문에 졌다고 할 수 없다. 이들 요인이 중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되는 ‘반(反)트럼프 대규모 시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두려움만으로는 클린턴 당선의 동력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선 승리를 위한 결정적 한 방이 부족했던 이유는 클린턴 전 장관의 대중적 이미지가 기득권 세력이자 부정직한 정치인으로 덧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 맥락에서 샌더스 상원의원을 패배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내세운 게 흥미롭다. 저자는 “샌더스 의원은 클린턴 전 장관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해선 일종의 면죄부를 줬지만 ‘클린턴은 기성 워싱턴 정치와 월가 부자들과 결탁된 인물’임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클린턴 전 장관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요인으로 귀결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8∼29세 유권자들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샌더스 의원에겐 8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보였지만, 대선 본선에선 클린턴 전 장관에게 55% 정도만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학자인 저자는 특히 “중장년 여성들은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보고 싶어 했지만 젊은 밀레니얼 여성들은 ‘내가 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클린턴을 지지해야 하느냐’는 전혀 다른 인식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의 세대 갈등 현상도 클린턴 전 장관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다.

저자는 “트럼프보다 클린턴이 ‘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건 e메일 스캔들만 물고 늘어진 미디어의 탓이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선 직전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미국 성인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언론의 편파성 문제를 조사한 결과 ‘언론 보도가 클린턴에게 유리하게 편향됐다’는 대답(52%)이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편향됐다’(8%)의 6.5배나 됐다. 트럼프 편도, 클린턴 편도 아닌 무당파의 대답도 ‘클린턴 편향’(41%)이 ‘트럼프 편향’(2%)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열렬한 클린턴 지지자였던 저자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밝힌 적이 없는 클린턴 전 장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느낌이다. 이 책이 주는 유일한 아쉬움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