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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동물원 동물들은 ‘어린이날’이 더욱 무섭답니다

입력 | 2017-04-28 03:00:00

잇단 비극… 행복하지 못한 전시동물




일부 관람객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동물원 동물들은 몸살을 앓는다. 10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을 찾은 어린이 관람객이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판 너머로 미어캣을 관람하고 있다. 과천=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bshin@donga.com

주말 경기 과천시 서울동물원. 기린 한 쌍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아이들은 처음 본 기린의 모습에 놀라 ‘꺅∼’ 소리를 지른다. ‘기린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는 안내판이 우리 옆에 있다. 하지만 봄기운에 들뜬 관람객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저지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기린만 마음의 병을 앓을 터….



○ 6년간 1067마리…죽음으로 불행을 말하는 동물들

동물원은 법적으로 ‘야생동물 등을 보전·증식하거나 그 생태 습성을 연구하고, 국민들에게 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 현대 동물원의 대표 기능은 ‘종 보전’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최근 동물원에서는 도리어 폐사 소식이 이어진다.

올해 2월 대전오월드의 한국호랑이가 경북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옮긴 지 9일 만에 폐사했다. 전주동물원에서는 벵골호랑이가 1월과 3월에 한 마리씩 죽었다.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선 2월 한국에 온 지 5일 된 돌고래가 폐사했다. 2015년 국정감사 정책 자료집에 수록된 ‘동물원법 제정안’에 따르면 2010년부터 6년간 전국 10개 동물원에서 1067마리의 동물이 죽었다.


이들의 죽음이 ‘호상’은 아니다. 사인은 제각각이지만 본래 살던 방식과 다른 사육 환경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초음파로 주변을 인식하는 돌고래에게 사방이 막힌 좁은 수족관은 고문실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쏜 초음파가 벽에 튕겨 계속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야생 돌고래는 140m 떨어진 물체까지 파악하는 초음파를 쏘지만, 수족관 돌고래는 환경 적응을 위해 짧은 거리만 감지하는 초음파를 낼 정도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수족관 돌고래는 한쪽 방향으로 빙글빙글 도는 이상 행동을 보이다 세상을 뜨고 만다. 야생 돌고래 수명이 30∼40년인 반면 우리나라 수족관 돌고래의 평균 수명은 4년에 불과하다.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고래류와 함께 북극곰, 코끼리, 영장류를 전시 부적합 종으로 꼽는다. 사육장 면적이 야생에 비해 비좁은 건 공통된 문제. 북극곰에겐 극심한 기온 차, 코끼리에겐 딱딱한 동물원 바닥, 지능이 높은 영장류에겐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다.

서울동물원 관계자는 “최대한 야생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동물의 스트레스를 줄이려 한다”며 “먹이를 찾아 먹기 좋아하는 미어캣에겐 풀 속에 먹이를 숨겨주고, 코끼리 똥 냄새를 좋아하는 사자에게는 코끼리 똥을 주는 등 동물이 자연에서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하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 호랑이 배 속엔 신발, 물범 배 속엔 동전

2015년 대전오월드에서 죽은 한국호랑이의 배 속에선 신발 한 짝이 나왔다. 관람객이 장난 삼아 던진 신발을 먹고 변을 당했다. 서울동물원에서 죽은 물범의 배 속에선 120개가 넘는 동전이 나왔고, 악어의 위에선 페트병이 발견됐다.

관람객의 부주의한 행동도 동물을 괴롭힌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동물원의 조사에 따르면 동물원의 평균 소음은 70dB(데시벨)로 나타났다. 가장 시끄럽다는 열대우림의 소음은 40∼60dB, 사바나 기후는 20∼36dB에 불과하다. 바스락거리는 벌레 소리, 바람소리 정도가 본래 그들의 소음원이었다.

이처럼 낯선 환경에 노출된 동물은 혈압과 심박수가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번식 능력과 사회 활동도 영향을 받는다. 이른바 ‘관람객 효과’다. 물범, 타마린, 유인원 등이 관람객에 취약한 대표 동물이다. 관람객이 많은 날 고릴라의 공격 행동은 평소보다 약 1.4배 늘어나고, 물범은 물속에 깊이 잠수한 채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몸집이 작은 유인원은 사람을 잠재적 포식자로 인식해 더 예민해진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은 “많은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는 상황과 이에 따르는 시선, 소음이 동물에겐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만 보이는 유리와 위장 울타리를 설치하고 예민한 동물을 인적이 드문 곳에 배치하는 등 간단한 조치로도 관람객 효과는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동물원의 의미와 순기능을 고민할 때”라며 “대중이 직접 동물원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동물을 위한 동물원으로의 변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 ‘미래 동물원’의 모습은?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이화여대 학생 7명으로 구성된 ‘그리니즘 프로젝트’ 팀은 전시동물 복지 향상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나섰다. 이들은 각 나라에 살기 적합한 동물들만 전시하는 ‘미래 동물원’을 제안했다. 실제로 사막에 사는 동물만 있는 미국 ‘소노라 사막동물원’ 같은 곳이다. 하지수 팀장(23)은 “한국의 미래 동물원엔 늑대, 호랑이, 담비, 수달 등만 살게 하고 관람객에겐 다른 동물을 전시할 수 없는 생명 존중 차원의 이유를 설명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엔 동물이 없는 동물원 ‘오비 요코하마’가 생겼다. 3차원(3D) 안경을 쓰고 영상으로만 동물을 만난다. 스페인 동물보호단체들도 최근 동물원을 없애고 가상현실(VR) 동물원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내놨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동물원법이 처음 제정됐다. 동물 복지의 첫걸음이지만, 복지보단 시설등록 등 관리 위주라는 아쉬움도 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동물원법은 전시동물 복지 관련 내용이 미흡하다”며 “생태적 습성에 맞는 사육 환경 제공, 동물 학대 방지 등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마련하는 입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QR코드를 찍으면 ‘어린이과학동아’ 홈페이지를 통해 동물원 동물들의 사연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bshin@donga.com·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