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정유라 신고한 다음 체포장면 ‘특종 보도’ 옳은가 “동물원 코끼리 야생으로 보내야”… NYT는 기사가 보도된 뒤 기자의 청원사실 알려지자 사과 ‘취재 시 기자는 중립적 관찰자’… 저널리즘 기준 되새길 필요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이렇게 적극적인 행동까지는 아니었어도 대통령 탄핵 사태 내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보도 과정에 그대로 드러내는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초기에 대통령 하야 요구가 촛불 시위대의 구호였을 때 어느 TV 기자는 ‘하야’라는 글자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보도를 했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기자들도 있었다. 기자도 평범한 인간이므로 각기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언론 선진국인 서구 사회에서라면 어떻게 할까, 궁금했었다.
탄핵 사태 당시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한 신간서를 보고 그 의문이 풀렸다. 책에는 2015년 6월 28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에 ‘가장 외로운 코끼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트레이시 툴리스 기자의 사례가 나와 있었다. 툴리스 기자는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9년째 홀로 사육되고 있는 코끼리를 다른 코끼리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썼다.
원래 뉴욕타임스의 지침서에는 “취재 시 중립적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정이 있다. 예를 들면 선거 후보자에게 기부를 하거나, 시위 또는 행진에 참가하거나, 차량에 정치적 주장이 담긴 스티커를 붙이거나, 옷에 배지를 다는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지침서에는 온라인이든 직접이든 청원에 서명하는 것은 안 된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툴리스 기자는 서명이 기준의 위반으로 간주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뉴욕타임스는 결국 기자가 어떤 사안을 책임 있고 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으려면 청원에 서명하거나, 시위에 참여하거나 또는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등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 신문의 취재 지침이 기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중립적 관찰자가 되라는 것이다.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는 하되 그 사건에 직접 개입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온라인 청원서에 클릭하는 행위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자도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할 때는 그 건에 대해 기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
기자의 중립성을 밑받침하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법은 18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학대나 방치가 의심되는 경우를 본 경우 이를 반드시 주정부에 신고해야 하는 사람들의 직업군을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사에서부터 경찰관, 소방관, 교사, 법원 관계자, 종교 관계자, 어린이보호운동가 등 40종류가 넘는 직군이다. 그런데 이 중에 기자 또는 언론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매우 시사적이다. 기자는 기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 공익에 훨씬 더 부합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