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경북 성주에 배치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10억 달러(약 1조1300억 원) 시스템이다. 한국을 보호해 주는데 왜 미국이 돈을 내느냐. 한국이 비용을 내는 게 적절하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 ‘럭비공’이라고 해도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강경 대북정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사드 비용 청구서를 내미는 듯한 태도가 당혹스럽다.
외교부는 지난해 7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에 따라 사드 구매와 운용 비용은 미군이, 부지와 기반시설은 한국군이 제공한다는 약정에 서명했으며 사드 비용을 대라는 미국 측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SOFA를 무시한 트럼프의 말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일관되게 피력해온 한국을 배려하지 않은 신중치 못한 언행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점에 한국 정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 트럼프의 무감각 무신경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어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을 받을 이유가 더 커졌다’고 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정부는 다시 가져가라고 말해야 당당하다’고 주장했다. 사드 반대론자의 입지를 키워준 셈이다. 이는 백악관에 한국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줄 전문가가 제대로 없다는 말도 된다. 트럼프 취임 100일이지만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 주한 미 대사는 아직도 공석이다.
열흘 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북핵 위협 대응과 트럼프와의 수(手)싸움을 동시에 해나가야 하는 어려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는 사드 비용에 대해 SOFA 규정을 토대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해 될 건 되고, 안 될 것은 안 된다는 단호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중국의 치졸한 사드 경제보복으로 입을 피해가 수조 원대에 달할 수 있는데 마치 자신들만 희생하고 있다는 듯 청구서를 내미는 것은 진정한 동맹국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트럼프가 불쑥 들이민 청구서가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 또한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면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