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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자연주의 육아’ 내세워 아픈 아이 방치… “아동학대” 부글부글

입력 | 2017-05-01 03:00:00

‘자연치유’ 인터넷카페 논란 확산




“차라리 안 볼 걸 그랬어요. 끔찍하네요.”

28개월 된 아이를 둔 김모 씨(30·여)는 지난달 2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아기 사진들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온몸이 짓물러 빨개지거나 검게 딱지가 앉거나, 갈라져 피고름이 밴 피부 사이에 놓인 머리카락 사진 등이 ‘혐오주의’ ‘분노주의’라는 제목이 붙은 채 게시돼 있었다. 사진의 충격에서 벗어난 김 씨는 “같은 부모로서 아동학대라고 생각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한 부모들이나 카페 운영자에 대해 수사를 벌여야 한다”는 비판이 넘쳤다.

○ 백신, 항생제 과용 속 아이 지키는 법?

이 사진들은 자연치유를 추구한다는 인터넷 A육아카페에 ‘우리 아이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잘 낫지 않는다’며 회원들이 과거에 올린 것을 다시 퍼 나른 것이었다. 발단은 그 전날 한 회원이라는 사람이 ‘A카페 회원들의 맹목성을 비판한다’며 A카페에 오른 회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 글을 올린 것이었다. 이 비판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참혹한’ 사진들을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그러나 A카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항생제 과잉 처방과 과도한 백신, 예방접종이 내성을 길러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항생제도 먹히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는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약을 사용하는 대신에 면역력을 길러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해야 한다며 그들 나름의 ‘처방’을 공유한다.

각종 질병에 대한 이른바 민간요법 노하우가 공개되고 회원들이 실제 활용한 경험 등을 글로 올린다. 가령 몸에 상처가 나거나 갈라져 진물이 나면 소금물에 담가 소독하고, 배탈이 나면 숯을 먹인다는 등의 정보다.

대구 수성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카페 운영자 김모 씨도 그 나름의 노하우라면서 온라인 강의를 카페에 올리고 있다. 아토피에 대해 김 씨는 “순(純)비누로 씻기되 로션은 바르지 말라”며 “진물은 나도록 놔두고 햇볕 쬐기, 땀 내기만 열심히 하면 (아토피는) 저절로 좋아진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2013년 10월 개설한 A카페는 부모들의 호응을 얻어 회원이 5만7000명까지 늘었다. 김 씨는 지난해 ‘비법’을 소개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이 불거지자 A카페는 30일 현재 신규 회원 가입을 중단했다.

○ 무분별한 자연치유는 독(毒)

자연치유에 대한 맹신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았다. A카페에는 질병을 고쳤다는 후기 못지않게 부작용이 생겨 고민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일부 회원은 부작용을 호소하는 회원에게 자연치유법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병이 심각해져 종합병원에 다녀왔다는 후기도 적잖이 올라왔다.

논란이 커지고 운영자가 한의사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달 29일 대한한의학회는 성명서를 내고 “해당 카페의 주장은 현대 한의학적 근거 및 상식과 맞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 “예방접종의 경우 한의사인 지석영 선생이 도입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 카페는) 단순히 항생제, 스테로이드 남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선을 넘어 의학 상식에 근거한 일반 치료법까지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카페에서 공유되는 ‘자연주의 치유법’이 너무 극단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자연치유법 자체를 비상식적이라고 매도할 필요는 없지만 질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단순한 발열이라도 발열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것”이라며 “민간요법을 맹신하다 보면 의학적 처치의 골든타임을 놓쳐 영·유아가 더 큰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소금물 요법에 대해서도 “소금에 살균 효과가 있긴 하지만 소금으로 듣지 않는 균도 많아 오히려 세균을 증식시켜 상처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도 말했다.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의료진이 단순히 영리만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 같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되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면서 “의료계 스스로도 과잉 진료를 자제하는 등 수요자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위은지·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