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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박용완]삶-가족-다양한 세상사에 대한 깊은 사색과 통찰

입력 | 2017-05-01 03:00:00


다른 색들 오르한 파무크 지음·민음사·2016년

박용완 국립극장 홍보팀장

새순 사이로 벚꽃이 흩날리는 봄 낮에 이 책을 들고 서울 남산에 올랐다. 어깨의 맨살이 이불 밖으로 나와도 추위를 느끼지 않게 된 밤에도 책을 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듯, 하루하루 조금씩 읽었다.

1952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저자는 건축을 공부하던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82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출간됐다. 이후 ‘검은 책’(1990년) ‘눈’(2002년) 등을 냈고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다른 색들’이 혼재된 터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 동아일보DB

‘다른 색들’은 저자의 삶과 그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에세이다. 삶과 근심, 그림과 텍스트, 다른 도시들…. 600쪽 분량의 두꺼운 책을 구분 짓는 제목들만 살펴봐도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60여 편의 에세이는 대체로 짧지만 내밀하다. 작가는 노벨상 수상 당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은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또 끝난다. 앞선 글은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 쓴 것으로, 세상 모든 자식이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아버지의 따스한 살갗, 그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청년이 돼 처음 느꼈던 나와 가장 닮은 존재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더 나이 든 후에 맞을 “필연적 공통점에 굴복해 사그라짐”에 대해 썼다. 책 말미 아버지의 이야기는 저자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장 커다란 행복은 매일 반 페이지씩 만족스러운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시작하는 상상 속에서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을 하며, 제대로 상상하기 위해 익히 알고 있는 이 세계로 돌아오길 반복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단 한 줄이라도, 업무용 문서가 아닌 ‘나의 글’을 쓰려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으로부터 가족으로, 동네에서 국경 너머로 뻗어나갔다가 ‘나’로 회귀하기를 반복한다. 흥미로운 건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충실히 따라가도록 몰입하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독자 스스로를 놓치지 않게 하는 힘이다. 강력한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은 작가의 진솔함이다. 그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썼다.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이다.”
 
박용완 국립극장 홍보팀장·전 월간 객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