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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기자의 지금, 여기]“사드비용은 부담 불가… FTA 재협상 요청 오면 조목조목 따져라”

입력 | 2017-05-01 03:00:00

前 미국 연방 하원의원 김창준




지난해 10월 ‘트럼프에 대비하라’는 책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예측했던 김창준 전 미 연방 하원의원. 그는 “트럼프는 히든카드로 감춰야 하는 외교전략까지 트위터로 투명하게 공개하며 협상하는 사람”이라며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트럼프의 전면적 압박 정책이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전승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을 청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해야 한다고 한 발언이 대선의 변수로 떠올랐다.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풀어야 할 한미 간의 난제가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에 대비하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던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78)을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미래한미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이 당연시되던 때에 트럼프의 당선을 맞혔던 김 전 의원에게 한미관계 전략에 대해 물었다. 김 전 의원은 “다음 주 선출되는 한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을 보다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의 항모 칼빈슨함과 핵잠수함 미시간함이 와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했다. 미국의 대북 공격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은 없다. 보통 공격할 때는 예고 없이 한다. 이렇게 잔뜩 갖다놓고는 절대 안 한다. 북한이 김정남을 죽일 때나 미국의 시리아 폭격을 보라. 칠 때는 말없이 갑자기 친다. 미국이 항공모함과 잠수함 다 모아놓고 세를 과시하고 있는 것은 안 치겠다는 얘기다. 북한이 미국의 화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제발 좀 핵실험을 그만두라는 의미다.”

―트럼프가 한국에 사드 배치 비용 10억 달러를 요구한 배경은….

“한국은 절대 낼 필요가 없다. 트럼프는 비즈니스맨이다. 외교든 정치든 모든 것을 협상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새 정부와 협상을 앞두고 한 기선 제압용 발언이다.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미국의 정식 요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협상하면 된다. 사드는 우리 소유도 아니고, 미국이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갖다놓은 것 아닌가. 미 의회에 따지고 전 세계가 알도록 공개적으로 협상하라.”

트럼프 전술에 일희일비 마라

―먼저 크게 한번 질러본 후 협상을 시작하는 게 트럼프의 스타일 아닌가.


“맞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협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 나토 비용의 73%를 미국이 부담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펄펄 뛰었다.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쓰기로 약속했는데, 독일이 1.2%만 부담했다면서 이자까지 합쳐 420조 원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최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서는 ‘사실 나토가 있어야 유럽 평화가 유지된다’고 인정했고 적절한 협상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트럼프는 한미 FTA도 재협상 또는 폐기하겠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다. 정식 요청이 오면 조목조목 따지면 된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공장을 짓고 1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등 우리가 투자한 것도 많다.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해 돈으로 계산해 보라. 우리가 전혀 꿇릴 게 없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모두 14개의 FTA를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한미 FTA만 타깃은 아니다.”

김 전 의원은 트럼프 취임 100일 지지율이 40%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여론조사가 언제는 맞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지난해 내가 ‘트럼프에 대비하라’는 책을 썼을 때 개표 전날까지 하루에 한 권밖에 안 팔렸다”며 “그런데 트럼프 당선 후 하루에 500권씩 팔렸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트럼프는 미중 정상회담 중에 시리아를 폭격했는데….


“본때를 보인 것이다. 트럼프는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지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했으면서도 필요할 때 행동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 시리아 독재자가 자국민에게 독가스를 사용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김정은 정권도 김정남을 독가스 무기인 ‘VX’로 죽였다. 유엔이 화학무기를 금지했다. 시리아를 그대로 둔다면 북한도 마음 놓고 도발할 것이기 때문에 단호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지난 미국 대선 때는 트럼프가 러시아와 친하다고 해서 ‘트럼푸틴’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취임 후에는 중국과 더 가깝게 협력하고 있는데….


“국가 간에는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맹이 되고, 내일은 또 적이 된다.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7년간 단짝 친구로 지내 왔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를 앞장서 비판하고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봐라. 국가 간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중국인이 트럼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즈니스맨인 트럼프는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주는 대신 중국을 환율조작국에서 빼주겠다는 빅딜을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중국에 민주정치를 하라든가, 홍콩이나 대만, 티베트를 독립시키라는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는다. 중국에 치명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오직 무역만을 이야기한다. 장사꾼 기질이 있는 중국인도 협상을 좋아한다. 국가 간에 이념 문제는 대화로 풀기 어려워도 돈 문제는 앉아서 풀 수 있다.”

국가 간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어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전략으로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내걸었다.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와 어떻게 다른가.

“오바마는 8년 동안 사실상 한 게 없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는 대화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했는가. 반면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다. 내가 힘이 있어야 평화협상도 타결되는 것이다. 힘도 없이 대화에 나서면 상대방 눈치만 보다가 끝난다. 미국의 무력시위 때문에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4월 25일)에 아무 도발도 없이 꼬리를 내리지 않았나. 트럼프의 압박과 협상이 오바마의 인내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법인세율을 35%에서 15%로 낮추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법인세를 한 번에 20%포인트 낮추는 것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보다 더 급진적인 조치다.

―트럼프가 법인세율을 파격적으로 낮추려는 배경은….

“트럼프는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멕시코 국경에는 수많은 미국, 한국, 중국, 일본, 유럽 기업들의 공장이 있다. 중남미의 싼 인건비와 NAFTA의 무관세 혜택을 얻고자 하는 기업들이다. 트럼프는 NAFTA 때문에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며, NAFTA를 폐기하고 멕시코 생산 제품에 3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다. 그 대신 자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은 법인세를 20%포인트 깎아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향후 멕시코 국경지대의 공장들이 텅 빌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 공장들을 싼값에 인수해 중남미 시장 개척의 교두보로 활용할 만하다.”

―한국의 대선 후보들은 일제히 법인세 인상을 약속하고 있는데….

“기업 유치를 위한 법인세 인하는 글로벌 추세다. 반면 한국에서는 반(反)대기업 정서 때문에 법인세 인하를 약속하면 표가 떨어질까 봐 못 한다. 트럼프는 기업이 법인세를 인하한 만큼 고용 창출에 투자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고용 증가로 세수가 더 늘어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프랑스 대선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이나 마린 르펜 같은 기존 주류 정당 소속이 아닌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기성 정치인이 아닌 후보가 주목받는 것은 시대적인 현상이다. 기존의 낡은 이념이나 부패한 정치 시스템에 유권자들이 환멸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한국 대선은 60일 만에 치러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기 어렵다.”
 
법인세 인하는 세계적 추세
 
김 전 의원은 새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전략에 대해 “트럼프는 항상 자기가 가진 히든카드까지 전부 트위터에 올리면서 협상하는 것을 즐긴다”며 “우리도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협상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와 잇따라 회담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소외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선거 때 어떤 주장을 했더라도 취임하고 나면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후보도 있는데, 형제까지 죽이는 공포정치를 펼치는 김정은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한미동맹 강화하라고 해서 무조건 친미(親美)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과 당당하게 협상하기 위해서라도 새 대통령은 트럼프를 배척하기보다는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

―이번 한국 대선 TV토론을 본 소감은….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 후보들의 안보전략이 가장 큰 관심이었다. 그런데 ‘외교’를 주제로 한 TV토론에서 돼지 흥분제 논란 등 처음부터 끝까지 인신공격만 하는 걸 보고 실망했다. 후보들뿐 아니라 사회자도 자질이 떨어진다. 미국 같으면 어림도 없다.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할 때는 사회자가 ‘소리(sorry)’ 하면서 딱 잘라낸다.”

김 전 의원은 1961년 미국에 건너가 사업을 하다가 1992년 한국계 최초로 캘리포니아 주 연방 하원의원에 공화당 후보로 당선돼 내리 3선을 했다.

―당신 이후 미 하원의원에 당선된 한국계 정치인이 없는데,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한국계 정치인들은 대부분 소수 인종 보호를 내건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한인타운에는 낮에는 일하는 한인들이 많지만, 이들은 대부분 자녀 교육에 좋은 학군을 찾아 백인 거주 지역에 산다. 그래서 한인타운에서 출마해도 한인 표를 못 얻는다. 공화당에 들어가 주류 백인들과 정정당당히 승부해야 희망이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