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송평인]‘아니면 말고’ 구속

입력 | 2017-05-01 03:00:00


검찰이 권력형 비리로 구속 기소한 사건 가운데 10.1%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데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2013년 중수부 폐지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나 특별수사본부에서 구속 기소한 주요 권력형 비리사건 피의자 가운데 형이 확정된 119명의 대법원 판결 결과를 추적한 결과 이 중 12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기간 일반 형사 합의사건 무죄율(2.3%)을 크게 웃돈다.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거나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과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적인 피해자다. 황 전 총장은 2009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 재직 시 성능이 미달된 음파탐지기를 통영함에 납품하도록 업체의 시험평가 보고서 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2015년 구속 기소됐으나 1, 2심 무죄에 이어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전 청장은 2012년 제일저축은행 회장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역시 2013년 대법원에서 1, 2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7년)에는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오인받아 체포된 주인공의 변호인이 “기소되면 유죄 판결을 받을 확률은 99.9%”라며 차라리 죄를 인정하고 벌금형을 받자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99.9%는 영화 속에나 나오는 수치가 아니라 일본의 형사 기소사건의 실제 수치다. 구속 불구속 사건을 다 포함해서 이 정도이니 구속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는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구속 기소한 사건의 무죄율이 10%가 넘는다는 것은 굳이 청구하지 않아도 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얘기다. 법원에서 유무죄를 다툴 소지가 큰데도 여론이나 정치적 외압에 휩쓸려 사전 처벌 개념으로 구속하거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등 구속 요건과 무관하게 검찰의 수사 편의로 구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찰의 구속=유죄’라는 도식은 버려야 한다. 법원도 구속영장 발부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