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국제부장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하겠지만 북한 미사일 한 방이 수도권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가 발령됐다고 치자. 중역은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님과 나는 어디로 피해야 하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회사가 아무 대비도 해놓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간부는 벌써 자리를 뜬 뒤일 수도 있다.
북한과 남북 관계를 15년 동안 취재해 오면서 ‘그날이 오면’ 제대로 피해 살아남는 이들은 해마다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이라도 하는 공무원과 군인밖에 없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됐다. 개인과 기업 등 민간은 북한 도발 위험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외국계 기업들은 좀 나은 것 같다. 한 외국계 컨설팅회사 임원은 “유사시 뿔뿔이 흩어져 경상남도 바닷가 모 도시에 모여 일본 지사가 보내는 배를 탄다는 아주 간단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이 있긴 하다”고 전했다. 한 외국계 은행 서울지점의 지하실에는 비상식량과 금고 등이 있다. 경기도엔 본사가 파괴됐을 때 쓸 대체 사무실도 마련해 놨다.
다른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9·11테러 이후 전 세계 사업장에 같은 기준의 위기상황 대처 매뉴얼을 지키도록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임차한 건물의 지하실 등은 글로벌 방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컨설팅회사 임원도 “경남까지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일본은 지난달 29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지하철을 세우고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여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내 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북한 위협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이 지나치게 민감하다면 우린 너무 둔감하다.
‘4월 위기설’을 불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고의 압박과 개입’ 대북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된다면 북-미 간 군사적 대치는 주기적인 일상이 될 수도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을 것이다. 앉아 불안에 떨지 말고 준비를 하자. 그것 자체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저하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기업들은 모든 직원이 유사시 ‘어떤 순서로 지하 몇 층, 몇 열, 몇째 자리’에 대피하는지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연례 훈련부터 시작하자. 직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심시키는 배려다. 정부는 기존 지하 주차장 등을 대피소로 전환하려는 민간에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다.
그날이 오면, 북한 체제의 끝도 온다. 그 기쁨은 철저하게 대비한 사람들의 차지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