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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3일부턴 유권자만 모른다

입력 | 2017-05-02 03:00:00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3일 ‘블랙아웃’이 시작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이날부터 투표가 끝날 때까지 6일간 실시된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발표할 수 없다. 그런데 후보들의 지지율 변화를 모르는 깜깜이 선거 국면에 들어가는 건 유권자들만이다. 발표를 못 할 뿐이지 조사는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과 조사 기관은 막바지 판세를 훤히 들여다본다.

선거 여론조사 금지 규정의 역사는 자유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의원 선거법에 선거 결과를 예상하는 인기투표 금지 조항이 들어갔다. 집권 자유당은 지지율이 하향세였고, 야당인 민주당은 인기투표 결과가 정권의 입맛대로 조작될까 봐 두려웠다. 대선의 경우 1987년 대통령선거법에 모의투표 금지 조항이 마련됐다. 1992년 이 규정이 조사 결과 ‘공표 금지’로 바뀌면서 지금과 같은 후보와 유권자 간 정보 불균형이 시작됐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이 조항은 200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에도 살아남았다. 공표 금지 시작 시점이 ‘선거일 공고일부터’에서 ‘선거일 전 6일부터’로 단축됐을 뿐이다.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999년 이 규정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 공표로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고 △될 사람을 밀어주는 ‘밴드왜건’ 효과, 안 될 사람에게 동정표를 주는 ‘언더도그’ 효과가 나타나 선거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고, 여론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도 그 결과가 유권자들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문제라면 신뢰도를 높이면 된다. 엉터리 여론조사를 골라내는 제도적 그물망은 촘촘해졌다. 2014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신설돼 여론조사를 심사한다. 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면 여론조사 심의 결과와 인용하면 안 되는 여론조사들이 다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는 게 왜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밴드왜건이나 언더도그 효과가 입증된 것도 아니다.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은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3자 효과가 확인됐다는 연구들은 있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를 막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프랑스에서 1주일간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했던 시절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의 자료를 스위스에서 사들여 인터넷에 공개한 적이 있다. 20년 전인 1998년 얘기다. 언론에서 믿을 만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는 동안 소셜미디어에서는 조작된 판세 분석 숫자들이 분주히 오고갈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는 지난달 25일까지 네이버 밴드와 페이스북 등에 유포된 이번 대선의 불법 여론조사 결과 9327건을 적발했다. 1985년 벨기에 선거 때 그러했듯 다수가 엉터리 숫자들 틈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누군가는 과학적인 데이터로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것이다. 벌써부터 문재인 테마주, 안철수 테마주가 TV토론 결과에 따라 널뛰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을 포함한 40여 개국엔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 제한이 없다(세계여론조사협회 2012년). 프랑스와 벨기에도 제한 규정을 폐지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6월 공표 금지 기간을 선거일 전날부터 투표 마감 시간까지로 단축하는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6일간 유권자만 블랙아웃’ 규정은 그대로다.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서?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귀띔했다. “국회의원들이 반대한다. 1등을 제외한 모두가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싫어한다”고.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