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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9K쇼 ‘변화구 괴물’… 973일 기다린 승리

입력 | 2017-05-02 03:00:00

류현진, 필라델피아전 시즌 첫 승
6회 1사까지 3안타 9삼진 1실점
1회 실점 뒤 체인지업으로 막고 이후엔 커브 결정구, 노련한 운영… 타석선 안타-볼넷 2번이나 출루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안방 다저스타디움에서는 팀 투수가 삼진을 잡아낼 때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첫 소절이 울려 퍼진다. 973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되기까진 9차례의 운명 교향곡이 필요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0)이 탈삼진 9개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며 다섯 번째 도전 만에 시즌 첫 승을 수확했다. 1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5와 3분의 1이닝 동안 3피안타 3볼넷 9탈삼진으로 1실점 하며 2014년 9월 1일 이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2013년 5월 콜로라도전에서 세운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12개)에 버금가는 호투였다. 다저스는 5-3으로 이겼다.

KBO리그에서 뛸 당시 류현진은 탈삼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선수였다. 데뷔 첫해(2006년)를 비롯해 국내에서 뛰던 7시즌(2006∼2012년) 동안 류현진은 다섯 차례 탈삼진왕에 올랐다. 정규 이닝 최다 탈삼진(9이닝 17개) 신기록 또한 그가 세웠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도 류현진은 2시즌 연속 세 자릿수 탈삼진(2013년 154개, 2014년 139개)을 기록하며 경쟁력을 보여 왔다.

어깨 수술 전과 같은 시속 150km대의 빠른 공은 없었지만 타자를 요리하는 실력만큼은 여전했다. 이날 총 93개의 공을 던진 류현진은 커브로 4개, 체인지업으로 3개의 삼진을 잡는 등 변화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지난달 25일 샌프란시스코전과 마찬가지로 빠른 공(34.4%)보다 체인지업(37.6%)을 더 많이 던졌다. 1회초 1실점 뒤 무사 1, 2루 위기에서도 체인지업으로 삼진 2개를 솎아내며 위기에서 탈출했다.

경기 운영도 빛났다. 경기 초반 상대 타자들이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노린다는 사실을 간파한 류현진은 이후 커브를 결정구로 쓰며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4회에는 빠른 공을 적극 활용하며 상대의 의표를 찌르기도 했다. 평균자책점은 4.64에서 4.05로 낮아졌다.

모처럼 득점 지원도 받았다. 1번 타자로 출전한 앤드루 톨레스는 1회 2루타로 포문을 연 데 이어 류현진이 마운드에서 내려간 6회 2-1 상황에서 3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류현진의 특급 도우미가 됐다. 5득점은 올 시즌 류현진이 등판한 경기 중 최다다. 류현진 또한 타석에서 1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두 차례 출루에 성공했다. 포수 야스마니 그란달은 5회 무사 2루 위기에서 견제사를 잡아내며 류현진의 짐을 덜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1회초 수비수의 실책성 플레이에 3루타를 내주고도 위기를 잘 극복했다. 승리 투수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변화구 활용도 좋았다”며 높게 평가했다.

류현진 역시 “(수술 이후 첫 승을 하기까지) 이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면서도 “이렇게 마운드로 돌아와서 다시 이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뜻깊다. 변화구 제구가 잘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볼 배합) 패턴이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기억하던 코리안 몬스터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