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일자리를/청년이라 죄송합니다]2부 ‘노오력’ 내비게이션
올해 초 박수정 씨(24·여·동국대 정치외교학)는 두 번째 졸업유예를 신청했다. 남들처럼 번듯한 일을 하고 싶어 5급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다른 기업도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주변에선 눈높이를 낮춰보라고 조언했다. 박 씨는 “나랑 맞는 일을 해야 구직 의지도 생기고 오래 일할 텐데 무작정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극심한 취업난을 두고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처우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지난해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2.9%(323만 원) 정도다. 무턱대고 눈높이만 낮췄다간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리다 다시 구직에 나서는 ‘비계인(비정규직·계약직·인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스마트 시력교정,’ 어떻게 해야 할까.
○ SWOT 분석으로 정확한 목표점 찾기
박 씨처럼 자신과 직무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간과한 채 무작정 지원에 나서는 취업준비생이 많다. 컨설팅을 통해 그의 직업적성을 알아보고 SWOT 분석을 해봤다. SWOT은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의 4가지 요인으로 나눈 분석틀로 이를 취업에 대입시켜 본 것이다.
100점 만점에 62점. 얼마나 취업 준비가 됐는지를 평가해보는 취업준비행동조사에서 박 씨가 받은 점수다. 컨설팅을 맡은 김용선 서울고용센터 위탁 컨설턴트는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미흡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취업정보를 찾는 구직 기술이 부족했다. 원하는 직무를 바탕으로 역량 기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직업적성검사와 직업가치관 검사에선 공공정책 홍보 업무가 그에게 잘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SWOT 분석틀로 역량을 평가한 결과 박 씨의 강점은 높은 어학점수(토익 905점)와 학점(평점 4.0). 노르웨이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대학생 연합 활동을 하는 등 국제 교류 경험도 풍부했다. 반면 공공기관 인턴 등 직무와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박 씨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스펙을 관리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정보나 직무 경험은 부족했던 것이다.
컨설턴트는 “원하는 직무에 필요한 능력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스펙을 쌓는 취준생이 많다”고 지적했다. 박 씨에겐 “워크넷 등 취업정보 사이트를 적극 활용해 직무정보를 얻고 공공기관 인턴 모집공고를 수시로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눈높이를 맞춰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은 “하고 싶은 일, 구체적인 목표를 찾는 것이 첫 번째”라고 입을 모았다. 좋아하는 분야를 찾으면 취업 자신감은 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김모 씨(28·성균관대 문헌정보학)는 취업 준비를 시작한 첫해인 2015년 유명 은행과 대형 금융사 위주로 지원하며 허송세월했다. 국제통상을 연계전공으로 공부하며 물류에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취업할 때가 되자 남들이 말하는 ‘좋은 기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지원하다 보니 면접에서 질문을 받아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최종 단계에 올라도 자신감이 없어 번번이 탈락했다. 거듭된 실패 후 회사 크기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물류 분야만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지난해 6월 한 중견 물류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느라 관심도 없는 회사에 지원하며 시간 낭비한 게 제일 후회된다”고 말했다.
회사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김 씨는 직접 물류 관련 회사를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현장정보를 얻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항만 하역 전망과 중량물 운송 폭을 볼 때 같이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지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