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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스님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도, 맑게 하는 것도 우리”

입력 | 2017-05-02 03:00:00

3일 부처님오신날, 월주 스님에게서 듣다




월주 스님은 1980년대 이후 고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지도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모시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불국정토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우리 모두가 부처임을 자각해야만 세상은 밝아지고,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닫힌 사회가 열린 사회로 전환되고, 종속된 삶이 독립된 삶으로, 경직된 삶이 창조적인 삶으로, 구속된 삶이 자유로운 삶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80년과 1994년 두 차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 스님(금산사·영화사·실상사 조실)은 “부처님은 ‘중생이 곧 부처’임을 일깨우려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했다. 3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월주 스님을 지난달 29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아차산 자락의 영화사(永華寺)에서 만났다.》
 
“부처님은 법화경(法華經)에서 이 세상에 부처님이 오신 까닭을 묻는 질문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답했습니다. 중생들에게 진리의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고 깨닫게 해 중생들이 당신과 같은 대자유와 대자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분열망상을 걷어내고 ‘나’와 ‘내 것’이라는 옹졸한 욕심과 한계만 떨쳐내면 우리는 부처님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아름답고 당당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대선 캠페인 기간과 겹쳤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된 데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 정세도 일촉즉발의 위기다. 월주 스님은 “이즈막의 세상이 너무나 소란하고 시끄럽다”며 “촛불과 태극기로 대변되는 진보와 보수의 극렬한 투쟁이 국론을 쪼개놓을 정도로 우리 사회 갈등의 불은 지금도 쉬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월주 스님은 대선 기간에 각 후보 캠프 간에 벌어진 막말과 네거티브 공방으로 인한 갈등과 상처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의 발달은 우리에게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했지만 그만큼 유해한 정보와 왜곡된 지식마저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처님이 가장 경계하라고 가르쳐주신 ‘십악(十惡)’에는 살생, 도둑질, 사음과 함께 망어(妄語·거짓말), 기어(綺語·꾸며낸 말), 양설(兩舌·이간질), 악구(惡口·험담) 같은 사람의 말과 언어로 짓는 죄가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인격살인에 해당하는 언어폭력과 저질의 루머는 가장 사악하고 부도덕한 행위로 반드시 사회에서 퇴출돼야 합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 월주 스님은 “대통령 유고로 인한 비상상황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튼튼한 안보와 국가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지도자의 선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한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고, 성장과 분배가 골고루 안배된 경제정책을 펼치며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 선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월주 스님은 또한 “현행 대통령 중심제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고 대선 주자인 5당 대표들이 약속한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으로 헌법체계를 갖춰 다음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줄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또 “단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통합”이라며 “죄를 지은 이에겐 엄격하게 죄를 묻되, 그것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어야지 누군가를 증오하기 위한 발길질이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월주 스님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불교가 유린당했던 ‘10·27 법난(法難)’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총무원장 직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근 회고록에서 “10·27 법난을 몰랐다”고 말한 데 대해 월주 스님은 “당시에 수많은 스님이 서빙고에 끌려가 조사를 받아서 1주일 이상 모든 신문 방송에 대서특필됐는데 모를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언젠가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조계사에서 참회의 100일 기도를 한다고 찾아와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 이순자 여사는 ‘불교계에 대한 수사는 노태우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나는 백담사에서 처음 들었던 일이다. 아랫사람이 했지만 대통령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죄송하다’고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월주 스님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종교지도자로서 사회적 발언을 해왔다. 현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집’과 빈곤 국가를 돕는 ‘지구촌공생회’ 등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월주 스님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도 우리들이지만 세상을 맑히는 것도 우리들 자신”이라며 “아무리 어렵더라도 서로 나누고 소통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을 휩싸고 있는 어둠은 조금씩 걷힐 것”이라며 차기 대통령이 사회 통합을 위해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