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선물 대신 선거 때 홍준표 찍어라.”
직장인 김모 씨(28)는 최근 장인어른에게 이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당황했다. 지난해 결혼한 후 50대 후반의 장인과는 정치 얘기를 해본 적도 없었다. 더욱이 김 씨는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김 씨는 “장인어른은 가족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도 홍 후보 이야기를 하신다”며 “행여 지지를 강요하실까 두려워 어버이날 찾아뵙는 것도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 ‘어버이날 선물로 홍준표’
직장인 최모 씨(30)도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버지가 일주일간 매일 ‘어버이날 선물로 홍준표를 찍어라’는 내용의 글을 보내온 것이다. 결국 최 씨가 카카오톡 알람을 꺼버리고 읽지 않았더니 아버지가 갑자기 전화해 ‘왜 메시지를 읽지 않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최 씨는 “정치 때문에 부자 사이가 틀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받은 글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퍼뜨리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애비가 자식들의 참정권을 참견하느냐고 한다면 부끄럽다’면서도 ‘어버이날 효도 선물 한답시고 홍준표를 기억해다오’라고 노골적으로 지지를 요구한다. 홍 후보의 선거 구호인 ‘홍찍자’(홍준표를 찍으면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를 새긴 홍보물도 있다. 홍보물 배경엔 어버이날의 상징인 카네이션이 새겨져 있다.
● ‘어린이날 선물로 문재인’
어린이날을 앞세워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도 퍼지고 있다. SNS에는 “어린이날 레고도 놀이공원도 필요 없다. 문재인 심상정 찍는 게 선물이다”라며 부모에게 호소하는 글이 퍼지고 있다. 이 글은 홍 후보 지지 글이 ‘국가관’을 언급한 것을 빗대어 “노동관이 확실한 사람을 뽑아야 정시퇴근 하지 않겠느냐”고 풍자하기도 한다. 이 글 역시 가족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서도 퍼졌다.
대선 경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을 겨냥한 후보 지지 글이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 퍼지고 있다. 대부분의 홍보물은 지지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 ‘안철수 찍는 게 선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를 당부하는 홍보물도 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를 언급한 이 홍보물엔 ‘어버이날 꽃도 필요 없고 선물도 필요 없다. 안철수 찍는 게 선물이다’라고 적혀 있다. 3대 가족이 해맑게 웃으며 안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홍보물엔 엄마 아빠 이모 삼촌을 겨냥하며 ‘이번 어린이날에는 새로운 미래를 선물해주세요! 새로운 미래는 기호 3번 안철수래요!’라고 써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지지 호소 글을 퍼 나를 수 있다. 그러나 때 아닌 ‘5월 대선’이 만든 새로운 풍경이 자칫 세대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탄핵 이후 한국 사회의 세대 간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부모 자식 사이라도 서로의 신념은 존중하는 정치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