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법의 세계에도 과연 자비가 깃들 수 있을까요? 부처님오신날, 불교의 근본 사상인 남을 위한 진실한 사랑, 자비가 법의 세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사실 법과 자비는 서로 잘 어울리는 말은 아닙니다. 법은 공명정대하고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한 손에는 저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사진)는 심지어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 눈에 보이는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법정형의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 가중 또는 감경 요소를 가미하여 실제로 형을 선고할 때는 같은 죄목이라 하더라도 형벌의 종류나 경중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죄목이라도, 심지어 같은 범죄 사실로 재판을 받는 공범(共犯) 간에도 받는 형벌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참작해야 하는 정상(情狀·있는 그대로의 사정과 형편), 즉 감경 사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형을 정함에 있어서 범인의 연령, 성행(性行·성품과 행실),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대법원 산하 독립위원회로서 양형위원회는 국민의 보편적인 상식이 반영된 양형 기준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법이 자비를 베풀 때 어떤 사정을 살펴야 할지에 대해 자세하게 규정하고, 양형위원회를 통해 양형 기준을 공개하고 점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상참작이라는 형의 감경 요소 역시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불공정한 법의 집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법의 자비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사법부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려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양형 사유여야 합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