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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의 오비추어리]‘맥도날드’를 거대 프랜차이즈로 키운 홍보맨 골린

입력 | 2017-05-03 14:48:00

출처 : 골린 웹사이트


탁월한 홍보 마케팅으로 맥도날드를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키워낸 ‘광고계의 신화’ 앨 골린이 8일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일 자택에서 전립샘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맥도날드의 프랜차이즈 창업주 레이 크록은 1977년 회고록에서 “골린의 도움 없이 성공은 불가능했다. 오늘날의 맥도날드를 만드는데 막대한 부분을 담당했다. 우리는 미숙한 아마추어였다”고 고백했다. 골린의 이름을 딴 광고대행사와 맥도날드는 60년 이상 협력 관계를 지속하면서 모범적인 상생 구조를 입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본사를 둔 골린은 미국 10대 홍보대행사로 성장했다. 맥도날드, 존슨앤존슨, 다우케미컬, 도요타, 월마트, 닌텐도, 텍사스인스트루먼츠 등이 고객사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 34곳에 사무소를 운영하며 지난해 2억 달러(약 2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임직원은 1200여명.



● 홍보에 매료돼 ‘어릴적 꿈’을 포기하다

1929년 6월 시카고에서 태어난 골린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시카고 부촌의 한 영화관을 운영했고 외할아버지도 일대에서 영화관을 여럿 경영했다. 그는 가족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사를 장래 희망으로 꼽았다. 루스벨트대에서 경영학, 언론학을 전공한 뒤 영화제작회사 MGM에 들어가 언론 담당 직원이 됐다.

그는 클라크 게이블, 스펜서 트레이시, 로버트 테일러 등 전설적인 배우들의 언론 홍보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홍보 업무에 매료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평생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홍보가 바로 그런 분야였다. 1956년 MGM에서 나와 ‘맥스 쿠퍼’라는 광고대행사에 들어갔다.

골린은 직원으로 입사해 열심히 뛰었고 업무에서도 상당한 자질을 보였다. 그렇게 임원으로 승진했고 맥도널드의 홍보 업무가 크게 성공하면서 회사명은 맥스 쿠퍼에서 ‘쿠퍼, 번즈 앤드 골린’, ‘쿠퍼 앤드 골린’으로 바뀌었다. 회사 지분까지 인수하면서 마침내 골린으로 변경됐다.



● 운명을 바꾼 맥도널드와의 만남

맥도널드 형제(리처드와 모리스)가 1940년 5월 캘리포니아 주 남부의 소도시 샌버너디노에 세운 바비큐 가게로 출발한 맥도널드는 1948년 주메뉴를 햄버거로 바꿨다. 1953년에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프랜차이즈 1호점을 열었다. 그러나 맥도날드 형제의 프랜차이즈는 ‘저렴하고 빠른 서비스’라는 판매 전략 이외에는 별다른 강점이 없어 고전했다. 1954년 밀크쉐이크 기계 영업사원으로 맥도날드 가게에 방문한 52세의 레이 크록은 공장의 생산 조립라인 형태의 식당에 큰 감명을 받고 맥도날드 형제를 설득해 프렌차이즈 영업권을 따냈다.

크록은 맥도날드의 로열티와 상표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맥도날드 형제에게 현금 270만 달러를 지불했다. 1961년 맥도날드의 모든 권리를 인수했다. 크록은 1955년 시카고 인근 작은 마을 디플레인스(Des Plaines)에 넓은 주차공간과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며 15센트짜리 햄버거를 파는 첫 매장을 열었다. 그는 미시간호와 인근 리조트를 오가는 배고픈 고객들을 겨냥했다. 그러나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크록은 자신의 급여조차 충당하지 못했다.

고민하던 크록은 1957년 직원 6명짜리 소규모 광고대행사에 전화를 걸었고 28세의 광고 담당 직원을 시카고의 사무실에 당장 와달라고 요구했다. 골린은 바로 크록에게 갔다. 골린은 2008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당시 맥도날드는 매우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전국에 걸쳐 상당한 규모의 매장을 개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홍보가 이런 계획을 실현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 “브랜드 파워 높이려면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라”

골린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다. 브랜드 파워를 높이려면 지역사회, 고객과 함께 해야 하고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저서 ‘신뢰와 결과물: 오늘 고객의 신뢰를 받지 않으면 당신은 내일 시장을 잃을 것이다’에서 “옳은 일을 해라. 왜냐하면 그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고 고객사에 조언했다.

1974년 맥도날드는 필라델피아 가맹점을 중심으로 자선병원인 ‘로널드 맥도날드 하우스(Ronald McDonald House)’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했다. 골린은 이 프로그램이 확대돼야 한다고 믿었다. 로널드맥도날드 재단은 난치 질환 어린이, 전미고교응원단, 전미고교농구리그 등에 후원한다. 현재 63개 국가 및 지역에서 700만 명 이상의 어린이와 가족을 돕고 있다.

골린은 또 비영리기관 건물의 칠을 새로 해주거나 노숙자를 위한 무료 음식을 배포하는 등 지역 사회 공헌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다. 맥도날드는 1992년부터 매년 지역 사회에 가장 기여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선정해 ‘앨 골린 트러스트 뱅크상’을 수여하고 있다. 재단의 후원 사업은 소비자가 고객인 맥도널드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골린의 CSR에 바탕을 둔 홍보 전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