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정치부 기자
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3월 YWCA에서 한 연설을 근거로 들었다. “다음 정권에 그렇게 매력이 없습니다. 누가 한 4년쯤 실컷 고생하고 난 뒤 그때쯤 내가 맡는 게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시대가 그를 원했다면, 누구도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았다면, 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해야 했을까.
누구나 자기합리화를 한다. 특히 정치인들에게는 명분을 만들어 자신의 행위를 얼마나 합리화할 수 있느냐가 ‘정치력’을 재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먹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명분과 행동의 간극이 너무 클 때다. 이 시점부터 자기합리화는 궤변이 된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싸늘하다. 무엇보다 탈당 전후에 보인 행보는 ‘보수 대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겁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탈당을 결행하기 하루 전인 1일 밤 이들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를 만났다. 보수 후보 단일화에 대한 홍 후보의 의지를 들어보겠다는 이유에서다. 만남 직후 이들은 입을 모아 “도와달라는 홍 후보의 얘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면서도 “(탈당에 대해)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지켜본 한 정치권 인사는 “이들이 이미 탈당 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홍 후보와의 만남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탈당의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서다. “도와 달라”는 홍 후보의 발언이 탈당파들과의 교감 속에서 나온 말이라는 이야기도 정치권에서 돌고 있다. 홍 후보의 지지 요청에 고심 끝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달 28일 이은재 의원의 탈당 과정은 더 납득하기 어렵다. 당일 보수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바른정당 의원들과의 모임에 참석해 “개별행동 안 한다. 마지막까지 (단일화를 위해) 노력해야지”라고 했던 이 의원은 불과 4시간여 만에 ‘나 홀로 탈당’을 선언했다. 이 의원 역시 “좌파 집권을 막고 분열된 보수가 다시 하나로 합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병기 정치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