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꽃길, 숨쉬는 서울]<2> 게릴라 가드닝 & 나무 돌보미
방치된 자투리땅에 꽃을 심고 정원을 꾸미는 ‘게릴라 가드닝’(왼쪽 사진)과 주민들이 도로변 가로수를 입양해 관리하는 ‘나무 돌보미’의 활동 모습. 쿨라워·서울시 제공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1번 출구 근처에는 ‘담배굴’이 있다. 일부 흡연자들이 멀쩡한 재떨이를 놔두고 모래뿐인 화단에 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려 항상 지저분한 곳이다. 한 달 전인 식목일 저녁 이곳에 젊은이 30여 명이 몰려왔다. 여느 때처럼 담배굴을 찾은 흡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달리아와 버베나, 백일홍 같은 꽃 120포트(식물을 세는 단위)를 심고 유유히 사라졌다. 군사작전을 하듯 전격적이었다.
이들은 건국대 산림조경학과 학생들이 주도해 2013년 만든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 소모임 ‘쿨라워’ 멤버들. ‘작은 규모로 치고 빠지는 전투’를 뜻하는 게릴라와 정원 가꾸기를 뜻하는 가드닝을 합친 게릴라 가드닝은 방치된 땅에 기습적으로 꽃을 심고 정원을 꾸미는 행위를 말한다. 1970년 미국 뉴욕의 행위예술가 리즈 크리스티가 그린(green) 게릴라를 자처하며 지저분한 공터의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꽃밭을 만든 게 시초다. 땅 주인이 ‘사유지를 불법 침입했다’며 소송을 걸자 크리스티는 “자신의 땅이라도 관리 없이 방치해 이웃에게 피해를 줄 경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맞소송을 내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결국 뉴욕 시가 이 땅을 사들여 공원을 만드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동네 곳곳에 있는 지저분한 공터가 못마땅하다면 게릴라 가드닝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사유지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해외의 전투적 방식과 달리 시나 관할 구에 문의해 게릴라 가드닝을 할 수 있을지 먼저 파악하면 분쟁의 소지도 없앨 수 있다.
게릴라 가드닝은 시민단체 활동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공헌 수단으로도 널리 퍼졌다. 반드시 단체에 소속돼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정원학교를 운영하는 오경아 오가든스 대표는 “버려진 땅이나 관리가 소홀한 땅에 일반인이 씨앗을 뿌리거나 식물을 심어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번 정원으로 변한 땅은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주민 공동체가 이어받아 관리하면서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직접 꽃이나 나무를 심는 게 여의치 않다면 이미 심은 식물을 입양하는 방법도 있다. 집이나 가게, 학교 근처의 가로수나 자주 가는 공원에 있는 나무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다. 강동구 주민 최여용 씨(54·여) 가족은 이웃의 다른 두 가족과 함께 3년 전부터 자녀가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의 150여 m 길이의 띠녹지(길이나 건물 외곽을 따라 길고 얇게 조성된 녹지)를 입양해 관리하고 있다. 휴일마다 나가서 쓰레기와 잡초를 제거하고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자식처럼 꼼꼼하게 살핀다.
최 씨는 “직접 나무를 돌보게 되면서 봉사로 인한 기쁨을 얻을 뿐 아니라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자연환경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처럼 나무를 입양하고 싶다면 서울시가 각 자치구와 함께 2014년부터 매해 모집하는 ‘공원·나무 돌보미’가 되면 된다. 지자체로부터 필요한 비품을 지원받고, 자원봉사 시간 인증도 받을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민 5만2035명과 단체 276개가 공원 2241개, 가로수 1만4762그루, 수목 68만6000여 그루를 관리하고 있다.
정성문 서울시 조경과 주무관은 “환경 개선과 정서적 만족, 자녀 교육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기업이나 단체, 학교, 개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