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포퓰리즘의 고전적 사례는 ‘페론주의(Peronism)’이다. 1946년 페론이 집권했을 때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다섯째로 부유한 국가였다. 페론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10년 후 아르헨티나는 빈곤의 나락에 굴러 떨어졌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최근 사례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1위이다. 차베스는 넘쳐나는 오일 머니를 무상 복지에 펑펑 썼다. 빈곤율은 49%에서 25%로 낮아졌고, 자신도 대통령에 네 번이나 당선됐다. 하지만 지금은 빈곤율이 73%로 치솟고, 국민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다. 잘못 쓰이는 세금을 줄이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복지에는 돈이 드는 게 정상이다. 또 절약에는 끝이 있지만, 한 번 시작한 복지는 끝이 없다. 언젠가는 돈이 들어가게 돼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공공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나왔다. 국가의 긴급 현안에 돈을 쓰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본을 어기고 공익을 가장한 정책은 언젠가 탈이 나게 되어 있다. 국토균형발전을 내세운 세종시가 그렇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믿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1987년 이후 한국 정치는 본격적으로 민주주의 궤도에 올라섰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날로 강해져 망국론이 나올 지경이다.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 매니페스토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에 도전하는 모든 정당과 인물은 유권자에게 정확한 정책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그냥 정책이 아니라 비용과 재원, 집행 기간을 명시해야 한다. 집권하면 반드시 약속을 실천하고,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이를 심판해야 한다. 여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