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최종태 선생의 손’(2011년)
손도 말을 한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집중한다. 인물 사진을 찍는 또 다른 재미다. 손을 찍을 때는 대개 100mm 이상의 망원 렌즈를 사용한다. 그래야 손의 디테일을 잡아내 강조할 수 있다. 피사체의 말과 얼굴에서 느꼈던 맑음을 손에서 확인할 때 즐겁다. 손을 보고 사람을 짐작하기도 한다. 쉽게 산 이의 손에는 유약함이 나타나고 열심히 산 이의 손에는 굳건함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의외의 손을 가진 이를 보면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한 정치인과 악수를 하며 놀란 적이 있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부드러워 섬섬옥수라 해도 될 정도였는데 서민을 위해 살아왔다고 틈만 나면 했던 말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가 최종태 선생의 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흙과 돌, 나무를 다루는 조각가임을 감안해도 그의 손은 험하다. 선생은 “55년간 조각을 위해 쓴 흙이 한 트럭이 넘을 만큼 내 손은 운동을 많이 했다”며 “덕분에 내 신체 가운데 가장 쓸 만하고 맘에 든다”고 했다. 서울대 미대 교수 재직 시절 “아침에 눈을 뜨는 찰나 ‘조각은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생히 들렸다”는 경험담은 삼매 속에서 얻은 깨달음과 비슷하다. 그에게 삼매란 형상을 만들기 위한 평생의 노력이고 깨달음이란 진리의 구현이다. 한국 조각을 대표하는 거장이 조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는 숭산 스님의 ‘오직 모를 뿐’을 연상케 한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있는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음석상은 법정 스님의 부탁을 받고 단숨에 만든 것으로 불교 신도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