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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서울!/이한일]작은 농촌음악회를 꿈꾸며…

입력 | 2017-05-06 03:00:00


오랜만에 봄비가 내린다. 올해 들어 비를 맞아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농사에는 그저 봄비가 최고인데…. 작년에도 많이 가물었지만, 그래도 4∼6월에는 비가 자주 내려 큰 도움을 주었는데 올해는 영 미흡하다. 4월 초와 중순경에 두어 번만 왔다. 파종 전이라 작물에는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하얗게 핀 배꽃, 자두꽃을 떨어뜨리더니, 두 번째는 비바람이 되어 매화꽃을 흩날리게 했을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기상예보에 민감하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면 2, 3일 전부터 바빠진다.

이제 2년 차인 나도 수시로 일기예보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그제와 어제 이틀간 부직포와 비닐로 경작지를 덮어주는 ‘멀칭’ 작업을 끝냈다. 오미자밭과 옥수수, 수박, 참외 심을 800여 평에 밭이랑을 만들고 멀칭 작업을 했다. 지난해에는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내도 힘들어했고 마을 사람들도 제초제를 뿌리라고 조언했고 나도 잠깐씩 제초제 유혹에 흔들린 기억에 금년엔 아예 멀칭 면적을 배로 늘렸다.

아직까지는 농작물을 가꾸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 행복함을 지속시키기 위해 일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눈을 뜨면 밭을 돌아보고 아침식사를 끝내면 장화를 신고 삽을 잡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일을 바짝 서둘러서 끝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서두르면 반드시 지치고 어쩌면 지겨움과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농사일에는 열정보다는 지긋한 사랑이, 조급함 대신에 꾸준함과 느긋함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올해 야망 찬 계획을 하나 갖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고, 가끔씩 저녁식사에 초대해주고, 때가 되면 트랙터를 몰고 와 밭을 갈아주는 고마운 마을분들과 또한 심심치 않게 홍천을 찾아와 좋은 소식과 반가움을 주는 친지와 친구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고자 한다. 우리 집 잔디밭에서 바이올린, 오카리나, 기타 연주를 듣고 식사와 술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바비큐는 괜찮지만 뷔페는 아니다. 다만 서너 가지라도 가장 시골답고 홍천다운 음식을 준비해야겠다.

홍매화, 매발톱꽃, 채송화, 장미꽃, 영산홍 등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보면서 익숙한 가곡과 클래식, 가요를 감상하고, 무대 없는 잔디밭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연주하는 행복한 얼굴들이 보인다.

귀농 귀촌한 새 이웃을 보면서 여유 있는 일상에 부러움과 시샘도 느꼈지만, 남편들을 변화시켜 주었다는 마을 어느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이제 우리 남편도 내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존중해주는 것 같아요.” 부디 내촌 동화마을 작은 음악회가 끝나고 나면 나와 우리 마을에 또 다른 작은 변화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한일

※필자(61)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