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재판으로 본 박 前대통령 靑생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23일 열린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최순실 씨 재판으로 시작된 국정 농단 사건 재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동아일보DB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될 때까지 줄곧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23일부터 시작될 재판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자신이 주장해온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앞서 기소된 국정 농단 사건 관련자 재판은 비밀에 싸여 있던 청와대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법정에서 공개한 각종 증거와 피고인, 증인들이 쏟아낸 숱한 말 속에는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사(私): 비선에 의존한 박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에게 박채윤 씨(48·구속 기소)는 나이 차이는 조금 났지만 말이 잘 통하는 편한 동생이었다. 최순실 씨(61)의 단골 성형외과 원장 김영재 씨(57)의 부인인 박 씨는 박 전 대통령에게 청와대 참모 누구도 전해 주지 않는 바깥 민심을 들려주는 창구였다.
신뢰가 쌓이면서 박 씨는 이영선 경호관(38)의 차를 타고, 남들의 눈을 피해 청와대 관저를 14차례나 드나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때로는 박 씨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부모님을 잃은 뒤, 늘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는 이야기처럼 평소 ‘문고리 3인방’에게도 잘 안 하는 하소연도 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이야기를 하던 날에는 오랜만에 눈물도 쏟았다.
박 씨와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는, 이 경호관이 몰래 관저로 데리고 들어온 ‘아줌마’들에게 각종 시술을 받으며 풀었다. ‘기 치료 아줌마’, ‘주사 아줌마’, ‘왕십리 원장(운동치료사)’ 등 무면허 의료인들은 청와대 참모들보다도 더 자주 관저를 드나들었다. 시술은 관저 안에서도 청와대 직원들이 오가지 않는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가끔은 김영재 원장과 김상만 전 녹십자아이메드 원장(55)처럼 입이 무거운 자문의들을 불러 태반주사 등 주사도 맞았다.
관저 살림은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모두 청와대에 들어오기 이전처럼 최 씨에게 맡겼다. 최 씨는 긴 말 하지 않아도 박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맞춰주는 집사였다. 침실의 선반 위치를 조정하거나 커튼을 다는 일, 샤워 꼭지를 교체하는 일부터 전등을 가는 일까지 모두 최 씨에게 말하면 해결됐다. 최 씨는 손재주가 좋은 문모 씨를 청와대로 데려와 일을 시키곤 했다. 문 씨는 최 씨 소유인 미승빌딩의 관리인이었다. 청와대 관저의 ‘안주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최 씨였다.
공(公): 발목 잡은 ‘불통 수첩’
안 전 수석은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반드시 해내는 믿을 만한 ‘해결사’였다. 때로는 이상하게 들릴 법한 지시를 했지만 안 전 수석은 단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지시는 주로 전화로 했다. 안 전 수석에게 시키는 일이 늘어나면서 때로는 통화가 1시간씩 이어지기도 했다. 가끔씩은 불안한 마음에 “지금 얘기한 내용 다 적고 있나요?”라고 물어봐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학자 출신답게 안 전 수석은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꼼꼼하게 지시사항을 메모했다. 청와대에 근무한 2년 4개월 동안 안 전 수석이 일련번호를 매겨 가며 쓴 수첩은 56권이나 됐다. 수첩에 적힌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 중 상당 부분은 최 씨를 비롯한 측근들의 민원이었다.
안 전 수석의 수첩은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단단한 족쇄가 됐다. 안 전 수석은 수첩을 근거로 “모든 일은 박 전 대통령이 시켜서 한 것일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측근들이 회의 시간 내내 꼼꼼하게 받아 적은 내용도 박 전 대통령에게는 부메랑이 됐다. 4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구속 기소)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구속 기소) 등의 ‘블랙리스트’ 재판에서는 박준우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64)의 수첩이 공개됐다.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2월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뿌리 뽑아 끝까지, 불도그보다 진돗개같이, 한번 물면 살점 떨어질 때까지”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나라 전체가 편향돼 있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 좌파 척결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우리끼리’ 편하게 한 이야기도, 기록으로 남아서 불리한 증거가 됐다.
권오혁 hyuk@donga.com·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