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민가 덮친 산불… 대피문자는 오지 않았다

입력 | 2017-05-08 03:00:00

강릉-삼척 주민 수십만명 공포… 축구장 238개 넓이 산림 잿더미
안전처 “지자체 요청없어 안보내”… 긴급재난경보 시스템 또 무용지물




시뻘건 火魔 휩쓸고 간 뒤… 6일 강원 강릉시와 삼척시, 경북 상주시에서 대형 산불이 잇달아 발생해 주택 수십 채가 전소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밤샘 진화 끝에 7일 큰불이 잡힌 강릉시 성산면에서 한 주민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너진 집터를 찾아 깨진 기와를 살펴보고 있다(위쪽 사진). 전날 성산면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번지면서 민가를 위협하고 있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강원일보 제공

강원 동해안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큰 피해가 나고 주민과 관광객 수십만 명이 공포에 떨었지만 긴급 대피를 알리는 재난문자는 한 통도 발송되지 않았다. 시스템을 갖춰 놓고도 우왕좌왕하다 활용조차 못 했다. 지난해 ‘경주 지진’ 때는 늑장 발송이 문제였지만 이번엔 아예 발송조차 안 된 것이다.

7일 국민안전처와 산림청 등에 따르면 6일부터 이틀간 전국에서 산불 20건이 발생해 약 170ha(170만 m²)의 산림이 탔다. 이는 축구장(7140m²) 238개 크기에 해당한다. 피해는 강릉과 삼척(약 150ha)에 집중됐다.

특히 6일 오후 강릉시 성산면 야산에서 발생한 불은 초속 20m 이상의 강풍을 타고 급속히 번지면서 시가지까지 위협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로 대피 정보를 전할 정부의 긴급재난문자(CBS)는 주민들에게 발송되지 않았다. 화염이 산촌마을을 덮치고 아파트가 있는 택지개발지역 앞에까지 닥쳤지만 마을 이장과 민방위경보시설 등을 통한 ‘구시대적’ 방식으로 대피가 이뤄졌다. 강릉에는 연휴를 맞아 수많은 관광객이 있었지만 이들은 재난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주민과 관광객은 뉴스 속보를 접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파되는 정보를 통해 스스로 대피 경로를 찾아 헤매야 했다. SNS에는 “무서워 죽겠는데 어디에서도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서울에서 산불이 나도 과연 이러겠느냐”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산불이 번지던 6일 오후 11시 30분 국민안전처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앱)의 ‘재난문자’ 현황. 이번 산불과 관련해 대피 등을 안내하는 내용의 문자는 전혀 없었다. 안전디딤돌앱 캡처.


안전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재난문자 요청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강릉시는 “재난문자는 공문으로 요청해야 하는데 상황을 파악하다가 산불이 번졌다”고 설명했다. 확인 결과 재난문자 발송은 공문 없이도 가능하다. 안전처에 따르면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라 전국 기초지자체도 재난문자 시스템(cbis.safekorea.go.kr) 접속 및 문자입력 권한을 갖고 있다. 산림청도 산불과 산사태 등에 대비해 같은 권한이 있지만 2011년부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또 6일 안전처와 산림청의 SNS 계정에는 산불 정보를 알리는 단 한 건의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2005년 4월 낙산사를 태운 ‘양양 산불’ 이후 기후 변화로 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재난 대응 기관들은 태풍이나 지진에 비해 산불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산불에 대한 재난대응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 / 강릉=이인모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