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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최영해]차기 대통령 組閣 탕평 인사 보면 새 정부 성패 보인다

입력 | 2017-05-08 03:00:00

김황식 前 국무총리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로 통합과 탕평인사를 꼽았다. 정부 출범 직후 조각(組閣) 인사를 보면 새 정부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패권주의와 적폐 청산을 앞세우면 국민 통합이 어려워 질 뿐 아니라 국정 동력을 살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최영해 논설위원

《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이라 그런지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한마디 한마디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여야 대선 후보에 대해선 직설적 표현은 삼가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새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를 얘기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통령이 없어도 수출 잘되고 나라가 잘 돌아가니 굳이 거창하게 목표 세우고 잘하겠다고 발버둥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이제는 통합 얘기부터 꺼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기만 하면 국민들이 알아서 잘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그를 2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초미의 관심인 대통령 선거 얘기부터 꺼냈다. 》
 
―초유의 조기 대선이라 후보 검증 시간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후보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에서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꼈다. 그나마 TV토론에서 공방이 벌어져 국민들이 보다 나은 후보를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이나 이념, 정파를 버리고 사심 없이 판단한다면 지금 나온 자료로도 후보를 고를 수 있다.”

―모든 후보가 통합을 얘기했다. 진정 통합과 미래를 펼칠 후보가 누구라고 보는가.


“후보 공약에 미래와 통합을 얘기하는 것도 있지만 국민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당장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통합 구호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선거전략상 내놓은 공약은 국민 앞에서 철회하거나 조정해야 한다.”

―여소야대(與小野大)라 통합과 연대 없이 국정 운영을 해나가기 어려운 구조다.


“새 대통령이 협치(協治)와 연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해야 한다. 패권주의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 제반 세력과 충분히 소통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적재적소 탕평인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래도 대통령이 되면 챙겨야 할 사람도 있고, 가까운 사람을 많이 쓸 수밖에 없지 않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초기에 인사하는 것을 보면 정부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균형 잡힌 탕평인사를 하면 국민이 박수 치고, 그것은 국정 운영의 굉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면 여의도 정치권도 협조하기 마련이다. 새 대통령의 과제는 넓은 인재풀에서, 좋은 인재를 뽑아 쓰는 노력이 우선이다. 끼리끼리 편을 갈라 자기편 사람만 쓰고, 좋은 인재라도 정파와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차기 정부에선 조각(組閣)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정치권과 국민의 갈등이 지속될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통합정부를 얘기하고 인재를 널리 쓰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야권도 무리한 발목잡기로 비치는 행태는 삼가야 한다. 적절치 않은 인사에 대해선 정확히 지적해야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 된다.”

朴정권도 李정부 무리하게 청산하려 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을 청산하겠다는 공약도 있는데….

“적폐청산이 과거 정부의 정책에서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바람직하다. 비리가 있었다면 바로잡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나 부패 행태에 대한 게 아니라 정치보복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도 알게 모르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방위산업 비리, 자원외교를 철저히 조사했지만 상당 부분이 형사 사건에서 무죄가 났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사회 갈등이 재연되지 않을까.

“과거에 얽매여선 안 된다. 적폐 운운하면 정권부터 힘들어진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실패가 교훈이 될 것이다. 잘못을 고치지 않고 반복해선 안 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해야지 정권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한다면 아무런 득이 없을 것이다.”

―촛불 태극기로 나라가 분열된 뒤 치르는 대선의 의미는….

“촛불도, 태극기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생각이 다른 것이지 상대방이 틀렸다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견해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 존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통합하고 치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실패 원인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법치의식과 공공성, 책임감이 미흡했다. 1960, 70년대 국정 운영 방식을 지금 시점에 적용하니 문제가 됐다. 소통이 부족했고 널리 의견을 구하는 노력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잘한 건 없나.

“대북관계에 있어 비교적 원칙을 세우려고 노력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대북정책이 성공했다곤 할 수 없다. 그 밖엔 잘한 게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국정 농단 특검과 검찰 수사는 어떻게 평가하나.

“수사 기록을 제대로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만 국민여론에 부담을 느껴 수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없는지 걱정스러운 대목도 일부 느껴진다.”

진정한 보수가치 대변 후보 없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며 새누리당을 나왔던 바른정당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면서 역풍을 맞았는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박 전 대통령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그 문제가 해결된다면 보수가 하나로 합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있어야 한다. 애매하고 어정쩡하게 처리해선 곤란하다.”

―친박 책임론에 대한 견해는….

“책임의 양을 계량해서 서로 간에 책임이 크니 작으니 다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해 한바탕의 정리가 필요하다. 과거 일에 대해 책임 경중에 매달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필요는 없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평가할 것이다. 친박 의원들도 과거를 참회한다면 같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보수의 가치란 무엇인가.

“기존 질서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되, 시대 변화에 따라 필요한 개선을 적극 해야 한다. 자유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을 배려하고 포용해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사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보수의 가치다.”

―거기에 근접한 후보는 누구인가.

“다 부분만 얘기하지, 진정한 보수 가치를 어느 누구도 확실하게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거대 보수정당 후보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선거전략상 거친 말을 하면서 본전이 드러난 게 문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엉뚱한 일은 안 할 사람 같은데, 조직 기반이 없고 TV토론을 보면 콘텐츠가 부족한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가 패배하면 어떻게 되나.

“선거 패배 책임론이 일면서 보수가 자연스레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새 출발을 해야 한다. 홍 후보는 당권을 생각하는 듯하지만 떨어지면 끝이다. 안 후보도 이번에 떨어지면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봐야 한다.”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를 꼽는다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를 열어야 한다.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회복하고 해외건설 수주액은 연간 700억 달러를 넘어서야 한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사회통합을 이루고 기업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향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복지정책과 함께 저출산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좋은 인성을 가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교육개혁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노사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사용자, 노조 대표와 소통과 타협, 양보를 이끌어 내는 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유럽에서도 노사 갈등이 많았지만 정치권의 대타협과 국민을 설득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해결됐다. 강성노조와 귀족노조도 문제가 있지만 비난하고 밀어붙일 게 아니라 대화하고 설득하고 의견을 충분히 듣는 소통이 필요하다.”

―시급한 과제인 일자리 창출 공약들은 어떻게 보나.


“일자리 창출은 민간 베이스에서 이뤄지는 게 원칙이다. 일자리를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꼭 필요한 일자리를 공공부문에서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MB)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지만 사회복지 인력 4000명을 늘렸다. 막연히 머릿수 늘리는 것만 목표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청구서를 내밀었다.

“트럼프는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한 성품을 가진 대통령이다. 하지만 미 대통령 중 한 사람이고 4년, 8년 임기가 끝나면 지나가는 사람이다. 당황하지 말고 국제규범을 원칙 삼아 나름대로 전략이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한 말의 상당 부분이 기업가적 마인드의 협상 책략에서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가 비용을 요구했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상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한미 FTA뿐 아니라 제주해군기지에 반대했을 때 ‘국익에 필요한 일인데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두 사안에 찬성했다면 그가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른다. TV토론에서 다른 후보들이 왜 이 문제를 따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과시킨 FTA를 우리가 불리하다고 문 후보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트럼프가 미국이 불리하다고 재협상하자고 그러지 않나. 문 후보는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았어야 했다.”

―권력구조는 어떻게 바뀌는 것이 바람직한가.


“의원내각제는 의회와 정당 수준으로 볼 때 시기상조다. 이원집정부제는 내치와 외치 구분이 쉽지 않고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면서 4년 중임제로 가는 것이 좋겠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견제하려면 총리나 장관의 권한을 강화하면 된다. 국무총리 임명권을 대통령에게서 떼어내고 국무총리가 독자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면 대통령 견제와 권한 분점이 가능하다.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한다든지, 국민이 투표로 함께 선출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한국 발전 모델은 독일

―성공한 총리란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후보로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나.


“주변에서 권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제가 하기엔 여러 정치 여건상 적합하지 않았다. 보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이 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 입각을 제의한다면….


“그럴 리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이제 다 물러난 사람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집필과 기고, 강연 등을 통해 4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내가 받은 것을 전파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국과 독일의 협력, 특히 과학 분야의 교류 협력에 열심히 나설 생각이다. 한독동문네트워크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이 발전하는 데 참고 모델로 삼아야 할 국가는 독일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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