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당선]문재인 ‘운명’ 가른 5가지 장면
9일 오전 투표를 끝낸 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 뒷산에 올라 너럭바위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문재인 후보 캠프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펴낸 자전 에세이 ‘문재인의 운명’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운명처럼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던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를 딛고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실향민인 아버지 문용형 씨(작고)와 어머니 강한옥 씨(90)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문 대통령. 그의 ‘운명’엔 다섯 개의 변곡점이 있었다.
○ 장면1=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노무현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① 사법시험 합격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할 당시 사법연수원 12기 동기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찍은 사진.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이후 문 대통령은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소개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그걸 계기로,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가 만들어졌다. 여섯 살 차이지만 서로 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은 14년의 차이를 두고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 장면2=청와대 ‘왕수석’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② 청와대 ‘왕수석’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이 2004년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런 성격은 정계 입문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2015년 6월 의원 워크숍 당시 문 대통령과 한 방을 썼던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이 회의 후 자정 넘어 들어오더니 새벽 2시까지 보고서를 읽더라. 새벽 6시쯤 깨보니 또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고 전했다.
○ 장면3=노 전 대통령의 서거, 그리고 정계 입문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③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문재인 대통령이 2009년 5월 침통한 표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옮기고 있다. 동아일보DB
2009년 5월 문 대통령은 김경수 전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현 국회의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인생의 경로가 또 소용돌이친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렀다. 이후 친노 진영은 다시 결집했고, 그 중심에 문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 장면4=새정치연합의 분당과 4·13총선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④ 새정치연합 분당과 4·13총선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전남 순천을 찾아 지원유세를 하기에 앞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노관규 후보와 함께 큰절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후 문 대통령은 김종인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고, 민주당은 4·13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선전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 당을 떠났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당을 떠났다”는 ‘뺄셈의 정치’란 꼬리표는 문 대통령을 내내 따라다녔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혁신 반대 세력과 함께할 수 없었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일각에서 “지나칠 정도로 답답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신만의 원칙에 충실하다. 2015년 3월 한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문 대통령의 차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문을 위해 검은색 넥타이를 하시라’는 참모의 권유에 문 대통령은 “고인을 잘 알지 못하는데 (가식적으로) 검은색 넥타이를 하는 것은 오히려 거짓 예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선 과정에서도 “유권자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정장 차림을 고수했다.
○ 장면5=두 번째 대선 도전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⑤ 두 번째 대선 도전 3월 24일 동영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출마 선언에서 “이제 정권 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고 했다. 동아일보DB
이번 대선을 준비하며 “2012년과 완전히 다르게 캠프를 꾸리겠다”고 천명한 문 대통령은 임종석 전 의원, 송영길 의원 등 그간 거리를 둬 왔던 인사들을 설득해 캠프에 합류시켰다. 집권 의지도 강해졌다. 경선 전 문 대통령과 독대했던 한 비문 의원은 “참모들이 ‘3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정작 문 대통령은 앉자마자 ‘막걸리라도 한잔하자’고 하더라. 2시간 동안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 캠프 합류를 요청한 이유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데 정말 사람이 달라졌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정치상황이 조기 대선 구도로 급변했다. 한 친문 의원은 “당초 1년 가까운 장기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준비에 나섰지만 선거가 앞당겨지면서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뒤늦게 뛰어든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준비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결국 문 대통령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2위 후보군이 계속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여론조사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최종 승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