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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에 강하다” 대학-사시-대선까지 두번째 도전서 영광

입력 | 2017-05-10 03:00:00

[문재인 대통령 당선]문재인 ‘운명’ 가른 5가지 장면




9일 오전 투표를 끝낸 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 뒷산에 올라 너럭바위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문재인 후보 캠프 제공

“돌아보면 운명 같은 것이 지금의 자리로 나를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펴낸 자전 에세이 ‘문재인의 운명’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운명처럼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던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를 딛고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실향민인 아버지 문용형 씨(작고)와 어머니 강한옥 씨(90)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문 대통령. 그의 ‘운명’엔 다섯 개의 변곡점이 있었다.


○ 장면1=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노무현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① 사법시험 합격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할 당시 사법연수원 12기 동기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찍은 사진.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문 대통령은 1971년 경남고를 졸업한 후 재수 끝에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대통령은 판사를 희망했지만 유신반대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이후 문 대통령은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소개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그걸 계기로,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가 만들어졌다. 여섯 살 차이지만 서로 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은 14년의 차이를 두고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 장면2=청와대 ‘왕수석’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② 청와대 ‘왕수석’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이 2004년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3년 1월 당선자 신분이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던 문 대통령을 서울로 불러 “민정수석을 맡아 달라”고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차례로 맡으며 노 전 대통령 옆을 지켰다.

당시 문 대통령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청와대에서 유명했다. 한 친노(친노무현) 인사는 “시민사회수석실은 성격상 도처에서 보고서가 엄청나게 올라온다. 아침 회의에 가 보면 문 대통령은 보고서마다 밑줄을 다 쳐놨다. 밤새 읽은 것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다”고 전했다.

이런 성격은 정계 입문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2015년 6월 의원 워크숍 당시 문 대통령과 한 방을 썼던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이 회의 후 자정 넘어 들어오더니 새벽 2시까지 보고서를 읽더라. 새벽 6시쯤 깨보니 또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고 전했다.

○ 장면3=노 전 대통령의 서거, 그리고 정계 입문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③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문재인 대통령이 2009년 5월 침통한 표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옮기고 있다. 동아일보DB

“빨리 와주셔야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님이 산책 나갔다가 산에서 떨어지셨습니다.”

2009년 5월 문 대통령은 김경수 전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현 국회의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인생의 경로가 또 소용돌이친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렀다. 이후 친노 진영은 다시 결집했고, 그 중심에 문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그해 6월 “암울한 시대가 나를 정치로 불러냈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53%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뒤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저와 민주당은 많이 부족했다. 준비도 충분히 돼 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 장면4=새정치연합의 분당과 4·13총선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④ 새정치연합 분당과 4·13총선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전남 순천을 찾아 지원유세를 하기에 앞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노관규 후보와 함께 큰절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대권 재도전의 첫 단계는 당 대표 출마였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2·8 전당대회에서 그는 현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혈투를 벌였다. 이후 친문(친문재인)과 비문(비문재인) 진영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결국 2015년 12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일부 비문 의원들은 탈당했다. 대선 패배 이후 두 번째 정치적 위기였다.

이후 문 대통령은 김종인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고, 민주당은 4·13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선전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 당을 떠났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당을 떠났다”는 ‘뺄셈의 정치’란 꼬리표는 문 대통령을 내내 따라다녔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혁신 반대 세력과 함께할 수 없었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일각에서 “지나칠 정도로 답답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신만의 원칙에 충실하다. 2015년 3월 한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문 대통령의 차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문을 위해 검은색 넥타이를 하시라’는 참모의 권유에 문 대통령은 “고인을 잘 알지 못하는데 (가식적으로) 검은색 넥타이를 하는 것은 오히려 거짓 예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선 과정에서도 “유권자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정장 차림을 고수했다.

○ 장면5=두 번째 대선 도전

문재인의 5가지 장면 ⑤ 두 번째 대선 도전 3월 24일 동영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출마 선언에서 “이제 정권 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고 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6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 문 대통령은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히말라야 트레킹 당시 문 대통령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30분간 말없이 걷던 문 대통령은 “주류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측 핵심 인사는 “이른바 ‘SKY’ 출신도 아니고,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오래 활동한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한 기득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염원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적폐 청산’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선을 준비하며 “2012년과 완전히 다르게 캠프를 꾸리겠다”고 천명한 문 대통령은 임종석 전 의원, 송영길 의원 등 그간 거리를 둬 왔던 인사들을 설득해 캠프에 합류시켰다. 집권 의지도 강해졌다. 경선 전 문 대통령과 독대했던 한 비문 의원은 “참모들이 ‘3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정작 문 대통령은 앉자마자 ‘막걸리라도 한잔하자’고 하더라. 2시간 동안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 캠프 합류를 요청한 이유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데 정말 사람이 달라졌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서 정치상황이 조기 대선 구도로 급변했다. 한 친문 의원은 “당초 1년 가까운 장기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준비에 나섰지만 선거가 앞당겨지면서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뒤늦게 뛰어든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준비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결국 문 대통령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2위 후보군이 계속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여론조사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최종 승자가 됐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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