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톈진(天津) 출신인 첸 전 부총리는 외교부장이던 1992년 8월 이상옥 당시 한국 외무장관과 양국 수교에 서명했다. 2003년 출간한 회고록 ‘외교십기(外交十記·10가지 외교 이야기)’에서 한중 수교의 막전막후를 기록했다. 1991년 11월 서울에 온 고인이 비밀리에 청와대를 방문해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수교를 전격 제의했고, 한국 정부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화답했다는 내용이다.
한중 수교 사실을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에게 알린 것도 고인이었다. 수교를 한 달 앞둔 1992년 7월 북한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리자 화가 치민 김일성의 표정은 심하게 굳었다. 김일성은 “이미 결정됐다면 그렇게 하라. 우리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극복한다”고 답한 뒤 의례적인 오찬도 베풀지 않았다. 이후 북-중 양국은 8년간 최고지도자급 상호 방문을 단절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