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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파랗게, 땅 전체를

입력 | 2017-05-12 03:00:00


파랗게, 땅 전체를 ― 정현종(1939∼)
 
1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올리는
봄 풀잎,
하늘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고 있는 기둥
봄 풀잎
 
2
그림 속의 여자도 개구리도
꿈틀거리는
봄바람 속
내 노래의 물소리는 저
풀잎들 가까이 흘러가야지

 
시인은 풀잎을 어떻게 노래할까. 그는 풀잎이 아무 데나 함부로 피어 있다고, 흔하디흔하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풀잎의 낮음과 많음을 홀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가진 자, 높이 있는 자의 오만함이다. 대신에 이 시인은 저 풀잎들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하다고 말한다. 풀잎이 조용히, 그러나 거대한 일을 한다는 이 시인의 말은 옳다. 요즈음에는 더욱 옳다.

보자. 풀잎은 없는 듯했지만 때가 되면 언제나 파랗게 솟아오른다. 그것의 하나는 적지만 그것의 여럿은 적지 않다. 풀잎은 숨죽이며 있었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땅을 뚫고 나올 수 있다. 때가 되면 온통 파랗게 대지를 물들이는 풀잎들이 땅 전체를 들어 올리는 것만 같다. 봄은 풀잎들로 인해 찾아오고, 풀잎들로 인해 아름다워진다.

다시 보자. 풀잎은 키가 작은 듯했지만 뾰족하고 날카로이 제 방향대로 나아간다. 그 방향이란 보다 나은 쪽, 보다 밝은 쪽, 저 먼 하늘 방향에 있다. 그리하여 하늘 아래 풀잎을 보면, 또 땅 위의 풀잎을 보면 풀잎이야말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든든한 기둥이요, 땅을 들고 있는 탄탄한 힘줄로 보인다. 이렇게 풀잎을 새롭게 보고 나니 그것이 어찌나 좋은지 시인의 노래는 절로 흘러 풀잎 쪽에 다가가려고 한다.

여기서 하늘, 땅, 풀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전통적인 천, 지, 인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풀이란 보통 사람인 우리 모두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이 시에서 풀의 자리에 우리들을 넣고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어쩌면 우리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이면서도 땅을 받치고 하늘을 받치는 위대한 우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