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시대]사흘연속 일자리 행보 ‘공공 비정규직 제로시대’ 언급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천명하면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연내 비정규직 1만 명을 모두 정규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공항복합도시 개발로 2020년까지 3만 명, 2025년까지 5만 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공기관 평가지침 개정 작업 등을 통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외부 용역업체에 소속돼 간접고용 형태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인력이 대거 정규직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정부가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유지한 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만 급격하게 추진할 경우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늘리고 고용 유연성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 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감축은 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지난해 전체 근로자의 30%가 넘는 비정규직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대 초반으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행보는 일단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을 줄여 나간 뒤 대기업 등 민간 분야로까지 이런 분위기를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앙부처,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수는 지난해 20만3864명이다. 이들 대다수가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감축을 위해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평가지침 개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평가 기준을 재조정해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가점을 받을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는 즉각 공공기관 평가지침에 대한 전면 개정에 착수했다. 평가지침은 기재부 내부 지침으로 법 개정 사안이 아니다. 부처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바꿀 수 있다. 기재부는 올 하반기(7∼12월) 중 평가지침을 바꾸는 한편 공공기관 비정규직 현황 및 정규직 전환 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올해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여부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평가지침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성과를 평가하는 항목이 있지만 100점 만점에 4점(공기업 기준)에 불과한 ‘조직·인적자원 및 성과관리’에서 한 개 평가항목이어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문제는 민간이다. 공공은 어떻게든 정부 예산 등으로 정규직 전환 부담을 감당할 수 있다지만 민간에서는 고스란히 기업이 떠안아야만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벤처기업들로서는 사실상 ‘평생 고용’을 책임져야 하는 정규직을 무작정 늘리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 관계자는 “민간 기업에 정부가 비정규직 감축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정규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차별 없는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경제 체제에서 시장 논리에 어긋날 수 있는 법을 무작정 들이대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일자리 창출력을 떨어뜨릴 여지가 크다. 이 때문에 정규직의 과도한 보호를 완화하는 것을 포함한 보다 근본적인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세종=박희창 ramblas@donga.com·천호성 / 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