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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를 찾아서]긴장과 평화의 공존… 다리 양편을 잇는 휴전의 공간으로

입력 | 2017-05-15 03:00:00

캠프 그리브스 전시




상설전시장으로 변신한 기지 내 구식 콴셋헛.



강북강변도로는 자유로(국도 77호선)로 이어지고 킨텍스 근방의 이산포 나들목(일산)을 지나 계속 서행(西行)하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왼편에 나타난다. 그런 뒤에도 길 왼편엔 물이 보이는데 그건 임진강. 이후 차로는 점차 줄어 왕복 4차로가 되며 국도 1호선에 편입되는데 문산읍(경기 파주시)에서다. 거기서 좀더 달리면 넓은 다리를 만난다. 거기엔 차단구조물이 더 이상 갈 수 없음을 강변하듯 겹겹이 서 있다. 군인이 출입을 통제하는 통일대교로 건너는 민간인통제구역.

이 다리를 통과하려면 ‘예통’(미리 군부대에 출입을 통지하는 것)으로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검문소에 신분증을 주니 명단 확인 후 통행증을 내준다. 그걸 대시보드에 올리고 캠프 그리브스로 향했다. 왕복 8차로의 국도 1호선 도로는 간간이 차가 보일 정도로 한산. 그런데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게 있었다. ‘개성 21km 평양 208km’라는 이정표. 그렇지. 이게 개성공단 가는 길이다. 캠프 그리브스는 다리 건너 500m쯤 왼편으로 난 ‘적십자로’에 있다. 도라산역과 도라전망대, 제3땅굴 및 DMZ평화공원도 이리로 간다.

공중강습 ‘쿠라히’ 506연대의 부대마크.



이 길은 특별하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지 못한 곳임에도 지상에서 가장 평화롭게 다가오니. 그 이유. 다리 양편 세상이 너무도 달라서다. 건너편은 사람과 차로 북적이는데 여긴 산중절간마냥 조용하다. 이런 극적인 모순과 현격한 차이를 단 몇 분 만에 체험하니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런 곳, 지구촌에 여기뿐 아닐까 싶다. 그런데 캠프 그리브스에 도착해 또 하나 놀랄 일을 만났다. 군복 어깨에 붙이는 부대표식에 쓰인 ‘쿠라히(Currahee)’라는 단어다. 이건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러더스(Band of Brothers)’의 주역인 506연대의 이지(Easy)중대 마크. 드라마 1편을 보자. 이지중대가 노르망디상륙작전 투입에 앞서 미국에서 훈련받는 이야기인데 제목 자체가 ‘쿠라히’다. 쿠라히는 아파치족 말로 ‘홀로 서다(Stands Alone)’. 이게 캠프 그리브스의 미8군 제2사단 소속 506연대(주둔 시기 1953∼2004년·병력 750명) 구호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개척기 뉴멕시코 주에선데 제9기병대의 한 무리가 대치한 체로키부족을 투항 설득차 찾았다가 포위돼 전멸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한 병사의 살신성인적 활약으로 전원 생환했다. 이 공로로 그는 최고명예훈장을 받았고 그 명성과 군인정신은 고군분투하는 모습의 입상(立像)을 통해 전해온다. 그 이름은 클린턴 그리브스(1855∼1906). 이 공중강습부대의 구호와 기지명칭 모두 그의 이름에서 왔다.

17일 개막하는 캠프 그리브스 문화재생전시회 포스터.



위치는 남방한계선(중앙분계선 남방 2km) 뒤편 도라전망대의 남쪽 2km 지점. 6·25전쟁 발발 직후 최초 투입된 미 해병이 확보한 자리인데 기지가 선건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그게 버려진 건 비무장지대 방위가 한국군 전담으로 개편되면서다. 병력은 2004년 모두 떠났고 기지는 3년 후 한국군에 이양됐다. 그걸 경기도가 인수, 경기관광공사와 함께 문화재생사업을 펼쳐 이렇게 변했다. 하지만 기지의 절반은 한국군이 사용 중이고 경기도가 맡은 시설에도 장교클럽 등은 아직 손도 못댄 상태. 언덕마루의 이곳에선 임진강과 두 다리(자유의 다리, 통일대교)가 강 건너 임진각 평화누리와 함께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앞으로 멋진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관광공사의 기지 개·보수 및 문화재생은 성공적이다. 콘크리트 건물의 장병숙소와 본부로 쓰던 콴셋헛 건물은 물론 볼링장 실내체육관 무기고 차량정비소 등의 시설도 상당 부분이 원형을 유지한 채 깔끔하게 정비됐다. 이번 전시는 거기서 열린다. 정문 옆엔 남방한계선의 이중철책이 완벽하게 재현돼 있는데 거길 걷다 보면 DMZ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파주=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