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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對話]“충성심을 인사의 보이지 않는 척도로 삼지 않았으면… ”

입력 | 2017-05-15 03:00:00

임태희 前 대통령실장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으니, 국정 운영이란 결국 어떤 사람을 어느 자리에 쓰느냐와 다를 게 없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요즘 문재인 대통령이나 핵심 인사들에게 이런저런 인사 추천이 엄청나게 들어올 것”이라며 “진짜 적임자는 자신이 적임자라고 떠들지 않는 만큼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을 잘 가려내야한다”고 조언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진구 기자

《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대 정부가 대부분 밟는 전철이 있다.

‘인사 검증 실패.’

국무총리만 해도 장상 장대환(이상 김대중 정부) 김태호(이명박 정부)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이상 박근혜 정부)가 자진사퇴 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책임으로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총리는 안·문 두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로 본의 아니게 유임돼 장수 총리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 왜 이런 일이, 그것도 자주 벌어지는 것일까.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모든 정보가 모이는 청와대가 뭐가 부족해 부실 인사검증을 하게 되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장을 지낸 임태희 현 한국정책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각 인선을 논공행상으로 하지 않고,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차관 대행으로 갈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찾는다면 성공한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 검증은 어떻게 이뤄지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인사검증팀이 있다. 여기에 검찰 경찰 국세청 행정자치부 등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있는데, 납세 전과 위장전입 논문표절 경력 같은 정량적 자료들은 이들을 통해 해당 부처에서 받는다. 여기에 경찰은 거주지 주민 평가, 국가정보원은 주변 인물과 근무처 평판 등을 종합해 올린다. 이 자료와 후보자가 작성하는 200여 개 항목의 검증리스트, 본인 소명, 대통령실장(지금은 비서실장) 주재의 예비청문회 등을 거친다. 내가 실장일 때는 그렇게 했다.”



―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각 기관에서 올라온 자료와 판단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해당 인물에 대한 판단을 적는 난이 있는데 여기에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펜을 잡는 쪽(검증 최종책임자, 주로 민정수석비서관)의 생각이 거의 결정적으로 반영된다. 검증 대상자가 어떻게 해서든 작성하는 쪽을 접촉해 좋게 쓰게 만들기도 한다. 어차피 주관적 판단 부분이니 다른 사람 생각과 달라도 딱히 뭐라 하기 어렵다. 인사권자가 직접 아는 사람이 아니면 사실과 다른지 알 수도 없다.”

일하는 자리와 배려 자리 구별해야

―펜을 잡은 사람이 장난을 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업무 능력은 있는데 대인 관계가 미흡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시키고 싶다면 ‘소신 있게 일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대인관계가 다소 미흡함. 하지만 업무 능력은 탁월함’ 이렇게 적는다. 반대라면 ‘업무 능력에 비해 대인관계에서 많은 적이 있음’ 이렇게 쓰고. ‘보통’ ‘탁월’ ‘미흡’ 이런 판단이 누가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봐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눈치껏 소위 ‘마사지’해서 적기도 하고….”

―대통령이 시키고 싶어 하는데 막을 수 있나.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가 발생한 직후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는데 이미 거의 유력한 후보가 있었다. 이미 언론에도 유력하다고 기사가 났다. 그런데 당시 국면이 연평도 포격 직후라 새 국방부 장관 임명이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했다. 북한이 우리 군 인맥을 다 알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따라 ‘아, 계속 집적대면 정말 한판 붙을 수 있겠구나’ 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력 후보는 그런 이미지가 약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찾은 사람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인데, 전후 사정을 설명했더니 대통령이 받아줬다.”

―선거의 논공행상으로 자리를 주는 한 제대로 된 검증은 어려운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대통령 되는 사람이 진짜 큰 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는 일할 역량이 있는 사람을 쓰고, 선거 도와준 거 봐줘야 할 사람들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외부에 그런 자리가 많으니 그런 쪽으로 돌리고….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 역량이 안 되는 사람을 논공행상으로 임명하면 정말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대통령은 보낼 수 있는 자리가 많다. 결국 대통령의 의지 문제다. 그래야 자신도 평가를 받고.”

―위장전입이나 논문 표절은 청문회 단골 사안인데 왜 안 걸러지나.

“왜 안 하겠나. 200여 개의 검증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면 위장전입은 당연히 나온다. 문제는 내용인데 대체로 투기는 곤란하지만 자녀 학교 문제 등 나머지는 좀 이해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있다. 실제로 아마 위장전입만으로 낙마한 사람은 없을 거다. 논문 표절도 검증 항목에는 있는데 이게 사실 본인들도 기억을 잘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까지 엄격하게 거르면 사실 사람을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법조인의 경우 로펌 근무 때 고액 수입이 늘 문제가 되는데….

“로펌에서 검사장이나 대법관 출신을 데려가면 보통 월 1억 원을 준다고 하더라. 그게 통상적인 금액인 거지. 전관예우인 것은 맞는데 인사청문회에서 지적은 되지만 위법도 아니고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감사원장에서 낙마한 정동기 전 민정수석은 수입도 논란이 됐지만 대통령의 측근을 중립적이어야 할 감사원장에 지명했다는 점이 더 쟁점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당시에 내부적으로 특정 대형 로펌 출신은 쓰지 말자고까지 했고 실제로 그랬다.”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여기저기서 줄 대고 많이 들어오나.

“많지. 자천타천으로 엄청나다. 공직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무섭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접근한다.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언론에 이름 좀 올려 달라고 흘리는 것은 약과다. 시키고 싶은 쪽에서 슬쩍 흘리는 경우도 있고…. 공식 라인이든, 비공식 라인이든 추천 과정이라고 보면 들어오는 것 자체는 별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검증 대상에도 못 들어가는 소위 ‘깜’이 안 되는 사람이 밀고 들어오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진짜 대통령비서실장 외에는 풀 사람이 없다. 비서실장이 애기해야 한다.”

―정말 작은 것 하나도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었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검증 항목에 걸리는 게 단 한 건도 없었다. 거의 완벽했다. 그래서 MB가 더 좋아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 후보로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도 함께 올라왔는데 군 제대 후 방위산업체 고문인가로 있었다. 방위산업체에 있던 사람을 국방부 장관에 쓰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아 안 썼는데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지만 낙마하더라.”

대선 투표일인 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공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시스템 인사가 뭔가.

“딱히 정해진 개념이라기보다는 자기진술서, 관계기관 검증자료, 민정수석실의 검증자료, 이에 대한 본인 해명, 이 자료들과 함께 제대로 일할 능력이 되는지 비서실장 등 수석들이 당사자를 불러 예비청문회를 한다. 이 과정을 말하는 것 같다.”

―원래 그 정도는 당연히 하는 것 아닌가. 이전에는 그렇게 안 했나.

“안 했다. 대통령이 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시킨 것이지.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하다가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문제가 생기면 비서실에 해결하라고 지시하고, 해결이 안 돼 국회에서 계속 문제가 생겨도 그냥 임명하고…. 전에도 검증리스트가 있긴 했겠지만 200개로 늘린 것은 내가 재임할 때였다. 예비청문회도.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뒤 국회에 가서 인사검증을 시스템으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역대 인사청문회에 나온 모든 항목을 나열해 보니 약 200개가 됐다. 그게 현재의 검증리스트다.”

여당에 필요한 사람은 야당에도 필요

―능력 검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능력이나 실력 검증은 정말 어렵다. 교수는 연구 실적이나 학교 평판을 듣고, 공무원이나 군인은 그 사람이 거쳐 온 보직을 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공무원과 군대에는 책임감과 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몇 년간 했다고 하면 대개 능력 평가가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실력이 있는데 보직관리가 안 된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까지 발굴해서 쓸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인사를 한 것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외국에 비해 총리나 장관 임기가 너무 짧은 것도 문제가 아닌가.


“예전에는 12월이면 무조건 바꾸는 것으로 안 적도 있었다. 사람을 아껴야 하는데…. 연말 연초라고 개각하고, 사고 책임지고 물러나고, 청문 과정에서 낙마하고, 주요 인물은 경력관리도 시켜줘야 하고…. 인사 요인이 이렇게 많은데 어디서 그 많은 사람을 다 찾겠나. 여기에 같은 당인데도 전 정부 사람이어서 안 되고, 상대 정당 사람은 더더욱 안 되고…. 그러다 보니 깜이 안 되는 사람까지 써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여당에 필요한 사람은 야당에도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같이 상생을 해야지. 상대 정권에 발탁돼서 일하면 배신자라고 해서도 안 되고…. 나라가 중요하지 소속이 뭐가 중요한가.”

―인선과 관련해 새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인사를 정국 운영 카드로 쓰지 말았으면 한다.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인사 카드를 쓰지만 부담만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충성심을 인사의 보이지 않는 척도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직자의 충성은 국가와 국민을 향해야지 대통령이나 권력 실세를 향해서는 안 된다. 아마 지금 한창 자신이 적임자라고 자천타천으로 물밀 듯이 추천이 들어올 텐데 진짜 국민에게 충성하는 공직자는 자신이 적임자라고 떠들지 않는다. 야당도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눈으로 봐줬으면 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기 때문에 누구든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증과 트집은 다른 것이다. 정부를 흔들면 정치적으로는 이득일지 모르지만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기 때문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