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미국의 대북 중유 공급 중단,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등 연일 터지는 굵직한 사건들을 취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미국의 영변 핵시설 공습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전쟁 위기설도 확산됐다. 북-미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나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이 신문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이런 판국에 그런 조언은 한담(閑談)으로 들렸다. 북-미 간 대치가 고조될수록 ‘반전 드라마’에 대비하라는 취지였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하지만 2005년 7월 북한의 6자회담 전격 복귀와 9·19 공동성명 발표로 2차 북핵 위기는 수습 국면을 맞았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고 북한이 선언하자 한국 외교의 승리라는 자화자찬이 매스컴을 뒤덮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통일에 성큼 다가섰다는 장밋빛 전망도 쏟아졌다. 그러나 1년 뒤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9·19 공동성명을 파기하고, 다시 핵무장의 길로 들어섰다.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전망도 마찬가지다. 휴전 이후 지금까지 남북 관계의 숱한 부침(浮沈) 속에서 북-중 관계는 ‘절대 상수’로 여겨졌다. 항미원조전쟁(6·25전쟁의 중국식 표현)을 함께 치른 양국의 혈맹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 증거는 현실에서도 수없이 목격됐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대남 무력도발을 반복해도 중국은 수수방관했다. 지난 20여 년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퇴짜를 놓거나 시늉만 내며 북한에 ‘뒷문’을 열어줬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의 일차적 책임은 중국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도 중국의 ‘북한 편들기’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될수록 중국의 ‘전략적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의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도박’에 다걸기(올인)하는 것도 중국이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맹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예측이 실현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 우선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북한과 동일시하느냐는 점이다. 이는 중국이 김정은을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을 한 번도 베이징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권좌에 오른 지 5년이 넘은 혈맹의 수뇌를 홀대하는 중국의 속내가 무엇일까.
최근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가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을 해도 군사적 불개입을 주장한 데 이어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하면 조중(朝中)공동방위조약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도한 것에서 그 의중이 감지된다. 북-중 동맹을 누누이 강조해 온 우익 성향의 매체가 북한을 맹비난하는 것은 예사롭게 보기 힘들다.
김정은의 ‘핵 불장난’에 대한 시진핑의 인내심이 바닥에 근접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핵이 ‘금지선’을 넘을 경우 시진핑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빅딜’을 거쳐 김정은을 포기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면 대한민국엔 축복일까, 재앙일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과 전략으로 안보와 국익을 지켜낼 것인가. 향후 5년은 북한 핵문제와 북-중 관계의 격변적 사태로 한반도 정세의 최대 고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가 초유의 외교안보 격랑을 헤쳐 갈 비책(秘策) 마련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