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文 ‘정치 안 맞는다’ 평가… 살아서 집권 봤다면 놀랐을 것 문 대통령 역사관 盧와 일치… ‘주류 교체’ ‘적폐 청산’ 집착 과거 되돌리려는 것 아닌가 朴, 아버지 못 벗어나 실패… 文, ‘盧 실패’ 뒤집으려 말라
박제균 논설실장
그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인사와 정책을 쏟아낸 것에 한 번 더 놀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오랜 시간 준비한 듯 속도감 있게 문재인 정부의 틀을 짜 나가는 중이다. 적어도 인사에 관한 한 시작은 괜찮은 편이라고 나는 본다. 골수 친문·친노로 주변을 에워싸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정 부분 덜어낸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인사 하나하나를 질질 끌다가 발표가 나면 ‘어? 이건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기억이 생생한 터다.
문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은 여러모로 노 전 대통령과 겹친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말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점심 배식을 받다가 식판에 떨어진 콩나물밥을 무심코 집어 먹었다. 하필 그 장면이 찍혀 신문에 실렸다. ‘대통령이 소탈하다’는 게 중평이었지만 밥 먹는 데 소탈한 것과 국정 운영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1월 펴낸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을 교체하는 것이 ‘역사적인 당위성’이라고 주장했다. 1945년 해방과 1987년 6월항쟁 때가 친일·독재세력과 그 부역자 집단을 단죄할 기회였는데, 그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친일→반공·산업화세력→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세력’으로 화장만 바꿔가며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하고 있다는 논리다. 이런 역사관이 소위 ‘적폐 청산’의 논거다.
선거 과정에서 ‘대통합’을 말했던 문 대통령의 본심은 선거운동 전 집필한 책에 더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문 대통령의 역사관은 재임 시절 틈만 나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 강의에 열중했던 노무현의 역사 인식과 일치한다. 노 전 대통령이 선거 전략상 ‘재미 좀 봤다’던 행정수도 이전 공약도 주류 교체와 무관치 않다. 동서고금의 집권자가 기득권세력 교체를 기도할 때 내놨던 것이 천도(遷都)였다.
이 대목에서 ‘정치에 안 맞는 사람’이자 정치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고 대권까지 잡은 이유가 새삼 궁금해진다. 노무현의 실패와 좌절, 비극적 최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문 대통령. 혹여 ‘노무현의 실패’를 성공으로 뒤집기 위해 정치하는 것은 아닌가. 이를 위해 그토록 주류 교체와 적폐 청산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위험하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성명을 내고 국정 교과서 등 ‘박근혜표 정책’ 집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비리와 부패와 관련된 공범자 청산 △사유화한 공권력 바로잡기 △권력기관 개조 △재벌 개혁 △언론 개혁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6대 과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이 로드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재벌과 검찰 개혁에 이어 우병우 민정수석실과 ‘정윤회 문건’, 세월호 재조사와 국정 교과서 중단 카드를 벌써 꺼냈다. 아직 안 나온 것은 언론 개혁이지만, 문 대통령 성격상 언제 가시화할지 모른다.
무릇 과거와 싸우면 미래를 잃기 십상이다. 필요한 개혁은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의 목적은 과거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박정희 시대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패했다. 문 대통령도 노무현을 극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노무현 실패’를 성공으로 뒤집으려다 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다. 국민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노무현 아닌 문재인 정부 성공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