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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모바일 칼럼] ‘얼굴패권 정부’의 명과 암

입력 | 2017-05-16 03:00:00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간 최대 화제는 대선결과가 아니라 조국 민정수석에 대한 얘기였다(대선결과는 너무 뻔하지 않은가). “잘 생겼다”고 시작해서 “정말 잘 생겼다”로 끝났다. 필자와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닌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멋졌느냐”고 물어본다. 글쎄, 그때도 지금도 개인적으로 그를 알지 못하지만 촌티 줄줄 흐르는 남학생만 즐비한 시절이라 “법대에 키 크고 잘 생긴 친구가 있다더라”는 소문은 들었었다.

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민정수석 발탁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비서진의 수려한 용모가 화제다. 자유한국당은 조 수석에 대해 “지금 그 자리가 본인에게 맞는 옷인지 잘 헤아려보기 바란다”고 하면서 “조 수석은 잘생긴 것이 콤플렉스라고 해서 대다수 대한민국 남성들을 디스했다”는 논평을 냈을 정도다. 야당이 대통령 특정인의 외모를 논평한 것은 사상 처음이 아닐까. 잘 생긴 게 콤플렉스라는 말은 거북하게 비쳐질 수 있겠지만 당사자에겐 절실할 수 있다. 잘 생긴 사람들은 외모 때문에 진짜 실력을 평가받지 못한다는 낭패감을 가질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문 대통령부터가 빠지지 않는 외모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에서 만났을 때 옆자리에 앉았었는데 뚜렷한 얼굴윤곽이 인상적이었다. 오죽하면 김정숙 여사가 학교 다닐 때 알랭 들롱 닮은 친구가 있다고 해서 만났다고 했겠는가. 고교시절 사진을 보면 알랭 들롱보다는 장동건을 닮은 것 같은데 당시에는 장동건이 없었으니 알랭 들롱이 최상의 비유였을 것이다.

비서실장 임종석도 80년대 운동권 미남으로 이름을 유명했다. 당시 청소년잡지에도 소개가 되고 연예인 스포츠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 두 아이의 엄마인 한양대 졸업생 후배는 “임종석 선배를 보고 싶어 한양대를 지원했다”고 고백했다. 학생운동의 수장같지 않은 곱상한 외모에 임수경을 북한으로 보낸 대담한 행동의 기묘한 부조화가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변인인 김경수 의원도 용모라면 빠지지 않는다.

인종 종교 학력 남녀 등 온갖 차별 중에 동서고금을 통 털어 가장 큰 차별은 용모차별이다. 전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캐서린 하킴은 아름다운 외모, 건강하고 섹시한 몸, 능수능란한 사교술과 유머, 패션스타일 등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들을 매력자본이라고 지칭하고 매력자본이야말로 일상을 지배하는 조용한 권력이라고 지적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뤄진 국가차원의 연구결과와 아르헨티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실험 결과에 따르면 외모 프리미엄은 대략 15%가량 되며 매력적인 사람의 소득은 평균에 비해 15%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잘 생긴 외모는 분명 경쟁력이다.


TV시대가 열린 이후의 미국 대선에도 키 크고 잘 생긴 후보가 대통령으로 줄곧 당선됐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붙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유일한 예외가 아닐까 싶다. 19대 한국 대선에서도 어느 평론가는 “무조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문 후보가 후보들 가운데 가장 잘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준수한 용모는 주목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정치인에게는 정말 유리한 요소다. 외모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일단 유권자의 눈길을 끌어야 호감도를 높이고 호감도를 높여야 지지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가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높은 주목도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그렇지 머리가 별로이지 않느냐”라는 식의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큰 법이다. 잘 생긴 배우가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거나 아이돌그룹 멤버가 조금만 살쪄도 비난이 쏟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 큰 이유는 용모가 그 사람의 역량과 성과를 가릴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조 수석은 정윤회 문건 재조사 등 검찰개혁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그의 외모, 경력, 트위터 활동이다. 조 수석에 대한 관심이 문 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대통령에게 누가 될 가능성도 있다.

누리꾼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얼굴패권 정부’ 혹은 ‘외모지상주의 정권’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젊고 준수한 인물은 정부의 개혁성과 참신함을 드러내고 과격성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는 효과가 있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지만 아름다워 불행했던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어느 쪽일까.

정성희 기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