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수시특기자 중에는 미술과 음악 등으로 대학에 들어간 경우도 많습니다. 그 학생들 학점이 낮다고 전시회나 공연을 못하게 하면 말이 되나요?”
취지가 훌륭해도 현실과 괴리되면 좋은 제도가 아니다. 요즘 대학 스포츠를 강타하고 있는 최저학력제, 소위 ‘C제로 룰’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는 비난 일변도다.
KUSF는 2년 유예기간을 뒀다고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자마자 출전 금지를 강행한 배경에는 ‘정유라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와 조카 장시호 씨의 학사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체육특기자의 학사 관리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명분에 힘이 실린 것이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선진국과 달리 엘리트 선수의 길을 선택한 이상 학업은 뒷전이었던 우리의 현실은 바로잡아야만 한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대학 지도자 가운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점 관리를 엄격히 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은 이 규정이 형식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업으로 여겨온 선수들에게 영어 유치원부터 입시만 바라봐 온 학생들과 공부로 경쟁하라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다.
비단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야구협회는 2011년 고교야구에 주말리그를 도입했다.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며 훈련은 방과 후에, 경기는 주말 또는 방학에 치르게 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나올 수 없었다. 마지못해 수업에 참석해 잠을 자는 선수만 늘었을 뿐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중학교 때까지 운동만 해온 고교 선수들이 ‘실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말리그가 없던 때의 선수들보다 훨씬 힘든 시절을 보냈다. 오후 늦게까지 수업을 듣고(졸고) 새벽까지 훈련을 했다. 대회가 있는 주말에도 쉴 수 없었다. 그러면서 대학에 왔더니 ‘공부 기계’와 경쟁하란다.
길게 봐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 선수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C제로 룰은 이들이 대학에 온 뒤 적용해도 늦지 않다. 물론 그전까지 각급 학교는 운동선수들에게 적합한 커리큘럼을 개발해 이들이 기본적인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눈앞의 성과만 노린다면 공부도, 운동도 못하는 불쌍한 희생양만 만들 뿐이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